[책 속으로] 구골이 구글로 뒤바뀐 기막힌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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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폭스바겐은 왜 고장난 자동차를 광고했을까
자일스 루리 지음
이정민 옮김, 중앙북스
268쪽, 1만3500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혜’라는 음료는 달달한 전통음료라는 막연한 이미지였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편의점에서 식혜를 발견하면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거나 마음이 든든해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지난 봄 ‘의리 배우’ 김보성이 출연해 “우리 몸에 대한 으리(의리)!”를 외친 한 식혜음료 광고 덕분이다. 이 광고의 성공으로 식혜에는 ‘의리 음료’라는 멋진 스토리가 덧입혀지게 됐다.

 대중들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제품의 장점과 경쟁력을 열심히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요즘 기업들은 이야기에 주목한다. 기업이나 브랜드에 담긴 매력적인 이야기가 지속적인 매출을 이끄는 강력한 마케팅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미 증명됐기 때문이다. 책 제목에 등장하는 폭스바겐의 경우, 1961년 비틀을 출시하면서 ‘단점까지 털어놓는 솔직함’을 브랜드 이미지로 삼았다. 당시 잡지에 실린 폭스바겐 광고는 비틀이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널찍한 차가 아니라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면서 이런 내용까지 적었다. “이 차는 앞좌석 사물함 문을 장식한 크롬 도금에 흠집이 나 교체해야 합니다. 독일 볼프스부르크 공장에서 일하는 크루트 크로너라는 검사원이 발견했습니다.” 진실을 알림과 동시에 자사의 철저한 품질검사를 강조하는 전략이었다.

폭스바겐은 비틀 광고에 고장난 자동차를 등장시켜 신뢰 할 만한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사진 중앙북스]

 영국의 광고·마케팅 전문가인 저자는 이 책에서 세계적인 브랜드에 숨어있는 60여 개의 이야기를 파헤친다. 제품 이름에 숨은 비밀,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혁신 사례, 리더의 탁월한 결단 등 이야기의 종류는 다양하다. 검색사이트 구글(Google)이 우연한 실수로 탄생한 이름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지.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원래 10의 100제곱을 뜻하는 ‘구골(Googol)’을 사이트명으로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수표를 써 주던 한 투자자가 실수로 ‘구글’이라 적어넣으면서 역사에 길이 남을 이름이 탄생하게 된다. 가구회사 이케아에서 일하던 한 직원은 어느 날 탁자 하나를 집으로 가져가려다 차 뒷좌석에 실리지 않자 탁자의 다리를 떼어낸다. 그리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떼고 붙일 수 있는 조립식 가구를 고안하게 된다.

 브랜드에 얽힌 이야기는 직원들에게 회사의 기원과 역사를 쉽게 이해하게 해 주고, 브랜드의 가치를 깨닫게 해 충성심을 높이는 역할도 한다. 책에는 ‘팔지 않은 타이어까지 환불해주는 백화점’이란 스토리를 가진 미국 노드스트룸 백화점의 사례가 등장한다. 최고의 서비스를 내세운 이 회사의 직원안내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우리에게는 오직 한 가지 규칙만 있습니다. 모든 상황에서 스스로 최선이라고 판단한 일을 하십시오.’

 물론 부정적인 사례도 있다. 나이키는 한때 고객이 원하는 문구를 운동화에 새겨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한 학생이 ‘노동착취공장(sweatshop)’이라는 문구를 새겨달라 주문했고 나이키는 이를 거절한다. 이 사실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나이키는 제3세계 노동력을 착취하는 회사라는 ‘나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됐다.

 마케팅이나 브랜드 전문가라면 이 책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기네스 맥주·맥도날드·아디다스·코카콜라·타이레놀 등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브랜드의 깨알 같은 이야기가 풍성하게 담겨 있어 일반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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