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가계에 돈 푸는 건 좋지만 … 결국 내수 살리는 건 규제 완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다만…’. 정부가 24일 내놓은 경제정책 방향에 대한 재계의 협력 의지와 고민은 이 단어 안에 다 들어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는 새 경제팀의 내수 활성화 취지에는 공감했다. 전경련은 24일 “내수 부진과 저성장의 악순환을 끊어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고 논평했다. 함께 뛰겠다는 약속도 했다. 하지만 전경련도, 대한상공회의소도, 한국경영자총협회도 논평 안에 ‘다만’이란 꼬리를 달고 신중한 접근을 호소했다.

 ‘다만 논평’이 나온 근원은 경제정책의 축을 기업에서 가계로 옮기는 데 대한 우려다. 송원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기업에서 가계로 소득을 이전해 끝날 문제인지 의문”이라며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은 기업 투자와 일자리가 늘어야 내수 부진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일본 경기를 살린 아베노믹스의 출발점은 엔저와 투자 관련 법 개정을 통한 기업 살리기”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재계는 규제 개혁이 한국 경제의 난제를 해결할 가장 중요한 열쇠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입법이 한번에 쏟아지면서 (기업인들은) 자신들에게 적용되는 법이 뭔지도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호소했다. 그는 “어떤 규제가 문제인지는 이미 많이 얘기해 왔다”며 “중요한 것은 실천”이라고 말했다. 특히 “일을 벌려야 창업도 되고 고용도 된다”며 “일을 벌리지 못하게 하는 사전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에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고, 당장의 투자를 재촉하는 분위기에 대한 걱정도 크다. 박 회장은 “두산이 신사업을 찾아 투자하는 데 7년이 걸렸다”며 “투자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기회의 문제”라고 말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기업이 투자를 꺼렸는데 한국 기업은 그래도 꾸준히 투자한 편”이란 게 재계의 자기 진단이다. 박 회장은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정년연장 등 노동 이슈를 다 합치면 기업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타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당장 발등의 불은 사내유보금 과세에 대한 우려다. 전경련은 “기업마다 처한 현실이 다른 점을 감안해 기업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요청했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도 “사내유보금 과세는 세계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유보금을 마치 현금처럼 생각하는 오해는 바로잡혀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