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잡아 '첨단 부정맥 수술' 익힌 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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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세 마리나 잡았어요.”

 삼성서울병원 흉부외과 정동섭(42·사진) 교수의 말이다. 심장을 다루는 외과의사가 돼지를 잡다니 무슨 사정이 있었을까. 정 교수는 흉강경(가슴 부위 수술에 쓰는 내시경) 부정맥 수술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한 권위자다. 2012년 2월 이 수술을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했고, 최근 100번째 환자를 수술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선 6건 정도 수술이 있었다.

 흉강경 부정맥 수술은 최고난도 수술로 꼽힌다.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이 수술을 하는 의사를 손에 꼽는다. 팔딱팔딱 뛰는 심장에 직접 흉강경을 넣어 수술을 해야 하는 만큼 어지간한 손기술로는 어림도 없다. 미세한 실수로 심장을 잘못 건드리기라도 하면 그걸로 환자는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진다. 이런 어려운 수술을 연습없이 바로 환자를 대상으로 시작할 수는 없는 법. 그는 2011년 수술을 준비하면서 대안으로 돼지를 택했다.

 “인간과 돼지의 심장은 모양이나 위치가 꼭 같아요. 70~80㎏ 나가는 실험용 돼지 7마리를 주문해서 ‘사람이다’ 생각하고 연습했어요.”

 돼지 수술의 결과는 어땠을까. 4마리는 살았고 3마리는 죽었다. 그렇다고 실패는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노하우가 쌓였다. 어떻게 하면 더 빠르고 안전하게 원하는 부위를 잘라낼 수 있는지 알게 됐다고 한다. 그 결과 지금까지 실제 수술을 받은 100명의 환자는 모두 건강하게 살고 있다.

 기존 부정맥 수술은 메스로 직접 가슴을 갈랐다. 개흉(開胸) 수술이다. 심장을 멈추고 체외순환기(ECMO)로 피를 돌려가며 문제를 일으키는 부위를 잘라냈다. 뛰는 심장에 직접 메스를 대기가 어려워서다. 정 교수는 “개흉 수술은 심장을 세우는 자체만으로도 위험하고, 5㎜ 구멍만 남기는 흉강경에 비해 수술 후 상처가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부정맥 치료는 내과 시술이 주를 이뤘다. 가는 관을 통해 다리 혈관에 순간적으로 전류를 흘려주는 고주파절제술이다. 시술 후에 박동이 정상으로 유지되는 비율은 55~70% 정도다. 하지만 심장의 문제 부위를 직접 잘라내지 않아 이 부분에 피떡(血栓·혈전)이 생길 수도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항응고제인 와파린을 평생 복용해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반면 정 교수가 하는 흉강경 수술은 치료 성적이 월등하다. 수술 100건 중 정상 박동 유지율이 93.4%에 달했다. 원인 부위를 직접 잘라내기 때문에 와파린 복용도 끊을 수 있다. 정 교수는 “와파린은 다른 약과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감기약이나 비타민도 못 먹고 식단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며 “의사 입장에선 흉강경 수술이 어렵지만 치료 성적도 좋고 환자의 삶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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