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주의 강도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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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광주 은행 강도 사건은 범행에 사용된 자가용의 거주가 바로 범인임이 밝혀짐으로써 어이없이 해결되었다.
범행 34시간만에 종범이 잡히고 주범의 체포도 시간 문제라고 하니 아뭏든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주말의 은행, 그것도 행원·고객 등 1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진 이 대담한 백주의 강도 사건이 던져준 문제점은 적지 않다.
하루에도 수천만원의 현금을 취급하는 금융기관의 자체 방범망이 허술했고, 범죄 신고를 받고 이에 대응하는 경찰의 태세에 허점이 있었다는 사실도 그렇거니와 나중엔 어찌되건 우선 한탕을 하고 보자는 식의 한심한 사회 풍조를 다시 한번 목격했다는 점에서 우리의 충격은 크다.
그 중에서도 경찰의 근무 태세 및 수사 능력이 무엇보다 큰 문제점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사회의 안녕 질서를 유지해야 할 책무를 경찰이 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범행을 알리는 비상「벨」이 울리고 난뒤 불과 1백여m밖에 안 떨어진 현장까지 출동하는데 무려 6, 7분이나 걸렸다는 것은 무어라 변명할 수 없는 경찰의 자책점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다행히 인명 피해가 없었고 모 자기 차를 범행에 이용한 어이없는 실수로 범인들이 잡혔으니 망정이지 만약에 이들이 좀더 지능적인 범행을 해서 사건 해결이 장기화되거나 미궁에 빠지기라도 했더라면 초동 수사에서의 이 같은「미스」는 돌이킬 수 없는 실책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경찰이 처우 문제에서부터 과중한 업무량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어려운 여건 아래서 일하고 있는가를 모르는 바 아니다. 특히 일선 수사 요원과는 달리 파출소 근무자들이 강력 사건에 대해 민첩하게 대응치 못하는 사정도 짐작할 수는 있다.
하지만 비상「벨」이 울리면 반사적으로 무기를 갖고 출동하는 태세쯤은 평소에 훈련되었어야 하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광주에서는 지난해 11월 임동 새마을 금고 강도 사건을 비롯해서 거액의 현금을 다루는 곳에서 잇달아 4,5건의 강도 사건이 일어났지만 아직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한다.
서울만해도 금년 들어 하루평균 2건 꼴로 대소 강력 사건이 일어나고 있으나 검거율은 지극히 미미한 실정이었다.
경찰 수사력이 대체로 범죄 추세를 따라잡지 못하는 데다 평소의 방범 태세조차 긴장되어 있지 않고 헛점투성이라면 이는 중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후방에서의 치안 확보는 일선에서의 국방 못지 않은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적과 대치하는 일선 장병들에게처럼 범죄와 대결하는 경찰에 대해서도 팽팽하게 긴장된 근무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더우기 지금과 같은 전환기에 있어서는 일부 사회적으로 미숙한 사람들이 자칫 범죄를 저지를 충동을 느끼기 쉽기 때문에 경찰을 비롯한 모든 치안 당국자들의 경각심은 한층 높아야하고 촉각도 곤두서 있지 않으면 안된다.
범죄를 예방하고 최소한 그 발생의 빈도를 줄이는 전제는 물론 국민의 전반적 사회적 각성이 이루어지는 것이겠지만, 우선은 경찰의 수사 능력을 제고시키는 길이 있을 뿐이다. 갈수록 기동화·지능화·흉포화 하는 범죄에 대응할 만큼 수사력의 양적·질적 확충도 필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경찰관 모두의 투철한 사명 의식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 안녕 질서를 맡고 있는 경찰은 그 임무의 중요성이 지금과 같은 과도기에 더욱 빛나는 것임을 새삼 인식, 맡은 바 직분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을 거듭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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