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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신문 보기-1999년 12월 31일 7면] 'Y2K 종말론'과 꽃미남 밴드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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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7월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온다.”

2000년 1월 1일 밀레니엄 데이를 앞두고 세상은 온통 종말론으로 들썩였다. 시작은 프랑스 태생의 연금술사이자 점성가인 노스트라다무스(1503-1566)였다. 그는 1999년 또는 2012년에 종말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불안감이 퍼질 무렵, 또 하나의 종말론인 ‘Y2K 버그 종말론’이 등장했다.

Y2K 종말론이란 수십 년 전부터 쓰인 구식 컴퓨터 코드가 날짜를 기억할 때 두 자리(1992년도는 92, 1993년은 93…)로만 인식해 왔기 때문에 99 이후에 올 00을 받아들이지 못해 세계 곳곳에서 통신망 혼란, 정전 그리고 핵폭발 등의 대재앙이 일어나 지구가 종말한다는 내용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Y2K는 심각한 문제였다.

1999년 12월 31일 중앙일보 7면에 실린 한국전력의 광고를 보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밀레니엄 데이 하루 전날,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전이 직접 낸 광고다. 전면에는 ‘전력부문 Y2K, 안심하십시오!’라고 적혀 있다. 바로 위 ‘발언대’ 코너에 실린 사설의 제목은 ‘전국민이 Y2K문제 대비를’이었다. 글쓴이는 박용기 한국통신 Y2K 추진본부장이다. 국가 차원에서 Y2K를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Y2K 종말론’으로 사람들이 불안감에 휩싸였던 1999년, 뜬금없이 ‘Y2K’라는 이름의 밴드가 데뷔해 주목을 받았다. 고재근(리드보컬), 마츠오 유이치(기타, 보컬), 마츠오 코지(베이스, 보컬)로 구성된 한일합작밴드였다. 이들은 “세기를 이끄는 밴드가 되겠다는 포부를 담아 밴드 이름을 ‘Y2K’라고 지었다”고 말했다. ‘Y2K’라는 단어 자체가 이들에겐 20세기를 마무리하고 21세기를 준비하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밴드 Y2K는 어깨까지 오는 단발머리를 찰랑이는 ‘꽃미남’ 밴드였다. 그들의 팬클럽 이름이 ‘아도니스’(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미소년으로 아프로디테 여신의 애인)였던 것만 봐도 당시 Y2K의 외모가 어느 정도로 주목받았는지 알 수 있다. 급팽창한 인기에 힘입어 Y2K는 롤러 슈즈 CF 등 여러 광고에 등장했다. 특히 베이스를 맡았던 코지는 단독으로 초콜릿 CF를 찍으며 한국 CF에 등장한 첫 일본인이 됐다.

이후 고재근 탈퇴 등의 문제로 Y2K는 해체됐다. 하지만 Y2K는 여전히 유명하다. ‘전설적인 삑사리(음이탈)’ 때문인데 그 주인공은 유이치다. 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깊은 슬픔’의 고음 부분을 부르던 그는 연속 ‘삑사리’를 내고야 만다. 압권은 유이치가 음이탈 직후 어눌한 한국말로 “미안해”라며 사과하는 장면이다. 언제 봐도 재밌는 영상이다.

Y2K는 다방면에서 1999년을 관통하는 ‘키워드’였다. 12월 31일, 사람들은 새해를 축하하면서도 내심 맘을 졸였다. 하지만 새해 아침은 밝게 조용히 시작됐다. 일본에서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삭제되는 오류가 몇 건 보고됐고, 미국에서 도박 기계가 고장났다는 신고가 있었을 뿐이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했던 ‘공포의 대왕’은 나타나지 않았고, Y2K 종말론은 이렇게 해프닝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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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록지 인턴기자 rokji126@joongang.co.kr
[사진=중앙일보 지난신문보기 서비스,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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