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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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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카터」와「케네디」가 후보 경쟁을 시작할 무렵의 일이다. 일류 정치인치고는 점잖지 않아 보이는「히프논쟁」이 있었다.
어느날「카터」는「케네디」가 나서면 엉덩이를 걷어 차 버리겠다고 익살(?)을 부렸다. 기자들이「케네디」에게 달려가 그 말을 전하자『그 친구가 어느새 내 뒤를 그렇게 바싹 따라 왔었나?』라고 받아 넘겼다.
글쎄 이런 똑같은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면 어떤「드라머」가 벌어졌을지 궁금하다.
「에스프리」와「유머」의 정신이 깃들인 언행. 이것은 비단 사교계가 아니라도 민주사회에서 절실히 필요한 멋인 것 같다. 멋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예의랄까, 아니면「모럴」일 것이다.「버나드·쇼」는 워낙「에피소드가 많은 사람이지만, 어느날 한 자선 단체가 주최하는 무도회에 참석해서도 예외 없이「위트」와 「유머」를 보여주었다. 마침 그가 평소에 싫어하던 어떤 귀부인이 참석해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좀 민망한 듯이 그들의 거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때「버나드·쇼」는 그 부인 옆으로 가더니 함께 춤을 추자는「제스처」를 했다. 부인은 당황했지만 싫지는 않은 듯 응했다.
누가「쇼」옹에게『웬 일이냐?』고 물었다.「쇼」옹은 그의 귀에다 대고『오늘은 자선「파티」가 아니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동양에도 그런 정신이 없는 것이 아니다. 노자같은 현인은『복인가 생각했더니 화가 되고, 화인가 여겼더니 복이 되더라』는 말을 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우선 각박하지도 살벌하지도 않다.
멋을 잃지 않는 삶이란 바로 그런 너그러움과 여유있는 자세를 두고 말한다.
요즘 우리 현실을 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오늘의 정치상황과 관련하여 상대방에게 『차라리 공동묘지가 조용하다』는가 하면『쳐들어가자』·『때려부수자』『무슨 칼잡이』·『반동운운』등 원색용어들이 난무한다. 어느새 총장실의 기물을 때려부순 대학생들도 있었다.
그런 상황을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에선 모든 것이「증오」와「원색적인 감정」만으로는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자제와 도덕적 절제가 더 무서운 설득력과 위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도 대학인도「유머」나「에스프리」까지는 기대하지 않지만 차라지 예절의 정신만이라도 발휘하는 것이 오늘의 우리 현실을 풀어가는 순서인 것 같다. 얽힌 실을 잡아당기면 더 얽히기 마련이다. 한올 한올 풀어가는 것이 슬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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