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의외의 역풍에」「철퇴의 대응」공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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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당당한 입국에 의혹의 눈>
공화당은 소장 의원들의 정풍 대상자로 지목된 이후 이후락 의원이 김종필 총재를 물고 늘어지는 역풍을 일으켜 감정이 격앙됐다.
작년 12월 출국했다가 지난 14일 3개월만에 귀국하여「떡고물」운운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이 의원이 폭탄선언을 하고 나섰다.
공식적으로는「치아 치료」라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일부에서 망명설까지 나돌았던 이 의원이 일부 예측과는 달리 느닷없이 김포공항에 도착해 당당히「트랩」에서 내렸을 때 HR(이씨)의 복안이 무엇일까 점친 사람들이 많았다.
이 의원은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떡을 주무르다 보면 떡 고물이 묻게 마련』,『미국에 있는 동안 연락할 곳엔 다 연락했고 알릴 곳엔 다 알렸다』,『출국이 적합치 못한 사람이라고 정승화 사건 발표 때 표현된 것은 나를 지칭한 것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도 무언가 시사하는 것이었다.
이 의원의 24일 회견은 △당과 사전연락 없이 당사를 회견장소로 사용했다는 점 △고 박정희 대통령의 유지계승을 내걸고 유신 옹호론을 편 점 △김종필 총재에게 노골적인 반기를 들었다는 점등이 골격을 이루고있다.


특히 그의 회견시기가 25일의 당무회의를 하루 앞둔 점과 자신이 영남대학교의 이사진 개편(이사=이효상·백남억·이후락·박영수·이용희·이인기) 에서 이사로 중임된 직후였다는 점에 관심을 갖는 당 간부들이 있다.
최영철 대변인은『너무 의의다. 진의와 배후를 먼저 알아봐야겠다』는 일성과 함께『이 의원의 발언은 당의 단결을 와해시키는 해당적 발언으로 유감스럽다』고 했다.
고위 당 간부도『이 사태는 어차피 올 것이 온 것이고 다만 그 시기가 예상보다 빨랐을 뿐』이라며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 의원의 회견동기와 배후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JP(김 총재)와 HR는「5·16」후 숙명적 갈등관계였다. 64년 이 의원이 대통령비서실장이고 김 총재가 공화당의장으로 있을 당시 서로 견제하는 사이였고「6·3」사태로 김 총재가 자의반 타의반 외유를 떠날 때부터 적대관계가 시작됐다.
김 총재가 68년 일체의 공직을 사퇴할 때 공화당을 주름 잡던 4인체제의 막후에 이 의원이 있었다. 이런 관계가「10·26」후 당총재와 평의원이라는 격차를 보였을 때 HR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 관심을 쏟은 사람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과거의 관계가 원인이라면 지난 연말 공화당이 당직을 양산했을 때 유독 이 의원과 김진만 의원 2명에게만 당직을 주 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다 당내 정풍 운동이 이·김씨 2명만을 지목해 탈당 대상으로 몰고 가자 이 의원은 김 총재가 정풍을 뒤에서 조종하는 양 생각한 것 같고 그것을 기자회견에서 지적했다.
김 총재는 이런 것을 예견했는지 모른다. 며칠 전 정풍파 의원들이 당 간부들의 퇴진을 요구했을 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며 당 내외에서 더 이상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임호 의원과도 같은 맥락>
어쨌든 지난 10대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처음 원내에 들어와 지난해 YH사건 후 공화당에 처음 들어온 HR가 창당주역이고 범 여권의 다음 대통령후보로 유력시되는 김 총재에게 정면도전한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당내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런 점 때문인지 당내에서는 HR의 언동을 김 총재와의 관계나 당내사정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어떤 간부는『단순한 자기변호나 구명운동이 아니라「보이지 않는 손」과 연결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으로 봤으며 일부에서 한때 끈질기게 나돌던 신당설과 유관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여하튼 JP에 대해 치명타를 안김으로써 공화당을 공중분해 시키려는 계획된「작용」의 일환이라는 것이 당 간부들의 분석이다.
이 의원 발언은 지난 1월말 JP의 퇴진을 요구했던 임호 의원과도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지만 유신체제의 주역들에 화살을 겨냥했던 정풍파 의원들과는 궤도를 달리하고 있다.
그러나 JP가 총재로 추대되는 과정에서 당무회의가 의원들의 주장과 일치하고있다.
정풍파 의원들이 이 의원을 공격대상으로 함으로써 명분을 찾은 것과 이 의원이 오히려 자신을 욕한 정풍파 의원에게 관용을 주장한 것은 얼떨떨하다.
정풍파 의원들이 임호 의원의 가세를 배격했던 것처럼 HR에 대한 화살도 늦추지 않고 있다.
HR파동은 분명히 당내 소용돌이를 몰고 왔으나 이것을 당 결속의 계기로 삼겠다는 것이 역풍에 대한 대응인 것 같다. 최대변인은 HR회견 후 JP가 당직자들에게 『이럴 때일수록 동요하지 말고 당이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음을 전하면서 JP를 정점으로 한치의 대동단결을 이룩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어떤 당무위원은 JP에 대해 다른 사람은 말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HR만큼은 할 말이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국민들로부터 JP가「동정」을 받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 간부는 JP가 김영삼씨나 김대중씨로부터 이런 공격을 받은 것에 비하면 더 아프겠지만 상대적으로 HR의 부도덕성이 부각되어 국민의 동정과 지지를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차피 선거를 앞두고 김 총재의 축재여부와 과거경력 등이 한번은 문제점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보는 듯 하다.
특히 이 의원이 정풍파를 마치 JP의 홍위병 식으로 몰아붙인 듯한 인상을 준데 대해 정풍파 의원들은 거센 반발을 보였다. 당 간부들은 정풍파 의원들의 이 같은 반격에 일단 원군을 얻은 것 같은 표정이다.

<정치권 외의 개입을 우려>
유신 당시 HR는 중앙정보부장으로 핵심적 역할을 했지만 당시 총리였던 JP는 소외되고있었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 파동으로 JP와 HR를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사람도 있다.
공화당은 HR와 임호 의원을「제명」할 것으로 보여 이 숙당 과정에서 또 하나의 돌풍이 있을 것인지가 공화당이 안고있는 문제다. 말하자면 제2의 HR, 제3의 임호 의원이 나오지 않을 것인지?
또 HR의 반격이 당외 요인에도 있다고 할 때에는 무언가 정계에 새로운 현상이 생길지 모른다는 전망이 있다. 즉 신당출현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다. 신당이 나와서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까지는 좋으나 그 이상의 정치혼란 내지는 민주화의 차질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신민당의 폭력사태와 결부된 정치권내의 계속된 과열분위기가 정치권외에 어떤 명분을 줄 우려인 것 같다. 그래서 공화당 안에서는「조기진화」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고흥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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