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처우 개선을 …" 무릎 꿇은 소방관을 외면하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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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제발 소방관들의 처우 좀 개선해 주세요.” 소방관들은 정홍원 국무총리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애원했다. 지난 20일 세월호 수습 임무 중 순직한 강원소방본부 소속 소방관 5명의 합동분향소에서 벌어진 일이다. 정 총리는 이들을 위로하면서 “뜻 잘 알겠다”고 짤막하게 답한 뒤 분향소를 빠져나왔다. 소방관들의 처우 개선 요구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안타까운 순직이 발생할 때마다 이런 요구가 터져나왔고, 정부 역시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소방관의 근무 환경은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떨어질 뿐만 아니라 국내 다른 공직에 비해서도 열악한 편이다. 전국 소방공무원은 2013년 기준으로 3만9500명이다. 소방관 1인당 담당 주민 수는 1300명 선으로, 700~900명 수준인 미국·일본에 비해 월등히 많다. 지역 편차가 심한 것도 문제다. 주민 수가 급증하는 경기도 신도시의 경우 소방관 한 명이 2000명 가까운 주민을 맡는다. 강원도에서는 한 소방서가 서울시 면적 몇 배의 지역을 관할하는 경우도 있다.

 소방장비규칙에 따르면 소방대원은 방화복·안전화·안전장갑·방화두건을 각각 2개씩 보유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역이 이 기준에 미달한다. 낡은 장비조차 교체하지 못하고 있다. 소방차 노후율은 충남(37%)·강원(32%)·전남(28%) 순으로 도(道) 지역일수록 높다. 하루 3교대 근무가 원칙이지만 인력이 부족한 지역은 여전히 2교대를 해야 한다.

 정 총리가 “뜻 잘 알겠다”고 짤막하게만 언급한 이유는 있다. 나라 살림을 고려하면 처우를 당장 획기적으로 바꿔주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다른 예산을 줄여서라도 기초 장비는 갖춰주고 3교대 근무 정도는 지켜줘야 한다. 지역별 장비·인원·수당의 편차를 해소할 방안 역시 찾아내야 한다. 나라살림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목숨을 걸고 불길에 뛰어들어 시민의 목숨을 구하는 공무원에게 최소한의 배려는 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