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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 후 한 달, 두 달 … 컨트롤타워는 지금도 작동 불능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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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선체 인양 여부가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다시 바다에 뜬 이탈리아 크루즈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2012년 1월 이탈리아 남서부 지글리아 섬 연안에서 좌초돼 침몰한 이 배는 지난해 9월 선체 외벽에 공기탱크를 부착하는 방법으로 바로 세워졌다. 그 뒤 내부 수리를 거쳐 지난 14일 지지 장치 없이도 바다에 뜰 수 있게 됐다. 4200명의 탑승자 중 32명의 희생자를 낸 이 배는 곧 제노아항으로 견인돼 재사용 가능 여부를 진단받게 된다. 지금까지의 수습 비용으로 15억 유로(약 2조원)가 들었다. [AP=뉴시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24일로 100일을 맞는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아직도 찬 바다 속에 있는 실종자들을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지 못하고 있다. 가족들은 여전히 진도체육관 바닥에서 기다림과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정부에 대한 불신은 가시지 않고 확실한 실종자 수색 대책도 나오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사고 발생 뒤 하루가 지난 4월 17일, 기자가 첫 발을 디딘 진도 실내체육관은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극한의 감정들로 가득 차 있었다. 주저앉아 흐느끼는 학부모들, 통곡하다 쓰러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정부를 향한 분노도 폭발했다. “이들이 살아 있느냐”는 질문에 정부는 확실한 답을 못했다. 뾰족한 구조 대책을 내놓지도 못했다.

합동구조팀이 선내 진입에 성공하면서 확인된 희생자 수는 빠르게 늘었다. 사고 사흘째 선내에서 첫 시신이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하루에 36명의 시신이 수습되기도 했다. 시신을 운구하는 경비정이 들어올 때마다 팽목항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임시 시신안치소에는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실종자 가족’에서 ‘유족’으로 신분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잔인한 시간이 흘렀다. 기대는 이내 좌절로 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신을 찾는 것이 오히려 ‘축하’ 받을 일이 돼 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기쁨이었다. 그리고 지금 진도에 남은 실종자 가족들은 두려움과 싸우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가족들끼리 내색은 못 하지만 진도에 마지막에 남는 사람이 내가 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서복현 JTBC 기자가 세월호 침몰 사고 해역 인근에서 수색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무기력한 정부, 절박함마저 없어
세월호 사고 대응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졌다. ‘전원 구조’라는 틀린 정보는 가족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고, 동시에 정부의 초기 대응을 무력화시켰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정부의 우왕좌왕은 계속됐다.

사고 사흘째, 구조팀이 선체 식당 칸에 진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가족들이 한껏 고무됐다. 하지만 곧 잘못된 발표로 확인됐다. 희생자의 신원이 뒤바뀌는 일도 벌어졌다. 사고 직후 해경 3009함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크레인으로 선체를 올리거나 창을 깨고 진입하자는 의견이 나오다 누군가 ‘에어 포켓이 사라질 수 있다’고 하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고 말했다. 당국은 명확하지 않은 에어 포켓을 기대하며 공기 주입을 하느라 시간만 허비했다. 해경의 구조 매뉴얼에는 에어 포켓이 있어도 수온 15도 이하의 바다에서는 6시간이 지나면 생존할 수 없다고 나와 있다. 당국은 사고 초기 많게는 700여 명의 구조대원이 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실제 수중 수색은 100명도 채 안 되는 인원이 투입됐지만 당국은 이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은 사고 한 달, 그리고 두 달이 지나도 바뀌지 않았다. 6월 30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중간 수색 설명회를 열기로 했다. 목표했던 111개 격실의 정밀 수색도 끝내지 못한 터라 향후 대책에 관심이 모아졌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의 반대로 중단됐다. 대책은 없고 수색 여건이 안 좋다는 내용만 늘어놨다는 이유였다. 실제 실종자 가족들에게 나눠준 자료에는 깊어진 세월호 수심, 선체 붕괴 심화, 민간 잠수사 사기 저하, 장마 등 최악의 수색 여건이 나열돼 있었다. 그 내용만 보면 더 이상 수색 작업을 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는 듯했다. 설명회 하루 전에 만난 정부 관계자는 새로운 대책이 있느냐고 묻자 “크게 달라질 것이 있겠어요”라고 말했다. 고민이나 했는지 다시 묻고 싶었다.

지금도 답답한 상황은 이어지고 있다. 7월 수색의 핵심은 6시간 이상 수중 수색이 가능하다는 재호흡기 투입 여부였다. 실종자 가족들은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미국 잠수팀과 사전 협의가 안 된 채 현장에서 옥신각신하다 물에 발조차 담가 보지 않고 무산됐다. 해경은 7월부터는 수중 수색을 하지 않기로 했다. 민간 업체가 도입한 새로운 잠수 방식이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현장에 투입된 한 민간 잠수사는 발끈했다. “우리도 새 방식을 처음 써보는 사람이 많다. 적응 훈련을 하며 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해경은 수중 상황을 전해 듣고 지휘만 하고 있다.

오히려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보다 한발 빨랐다. 사고 현장에 바지선을 투입하자는 것, 야간 수색에 채낚이 어선의 불빛을 이용하는 것도 가족들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라고 한다. 실종자 유실을 방지하기 위한 차단봉 설치도 가족들의 제안이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궁하면 통한다”고 말했다. 뒤집어 생각하면 정부는 그만큼 절박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관계기관간 사이 엇박자 지금도 진행 중
사고 초기 유족들을 힘들게 한 건 각 부처별 ‘따로 따로’ 브리핑이었다. 세월호 사고를 두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해경의 중앙구조본부, 군 합동지원본부, 해수부의 특별조사본부 등 ‘본부’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거기에 법무부·교육부 등도 별도의 브리핑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같은 내용을 두고 서로 다른 내용을 발표하면서 혼선을 빚기도 했다. 각 본부와 부처를 조율하는 ‘컨트롤타워’가 없었던 것이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라는 조직이 생겨났지만 기관 간의 엇박자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수색의 축인 해경-해수부-해군의 불협화음이 이어졌다. 해경은 수색 현장 지휘, 해수부는 각종 지원 업무, 해군의 해난구조대(SSU) 대원 등 잠수 요원들을 투입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하지만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해수부가 주도적으로 나섰던 원격무인탐색기 투입은 해경이 지휘를 하고 있는 현장의 반대로 무산됐다. 해수부가 중심이 된 ‘88수중’ 업체 투입은 현장 도착 하루 전까지도 해경은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해경과 해수부는 치열한 신경전까지 벌이고 있었다. 해경 내부 보고 문건을 보면 재호흡기 투입은 해수부가 주도적으로 움직였고 해경과는 사전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나와 있다. 특히 재호흡기 검증 잠수에 실패하자 해경은 ‘책임 전가 가능성이 농후하다. 관련자들의 정보 파악이 필요하다’고 문건에 적었다. 서로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정보전까지 벌였던 것이다. 해군도 범대본의 의견과 무관하게 자체적으로 인력 축소 계획을 세우면서 논란을 불렀다. ‘컨트롤타워’의 부재 문제는 사고 100일 다 되는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다.

4월 16일에 멈춰 선 팽목항의 시계
7월 1일 범대본이 설치된 진도군청의 현수막이 철거됐다. ‘온 국민이 세월호 피해자 분들의 슬픔을 위로한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었다.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을 가득 메웠던 천막은 하나둘씩 사라져 갔고, 자원봉사자도 눈에 띄게 줄었다. 현장을 지키던 취재진도 대부분 돌아갔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에게 변한 것은 없다. 매일 배를 타고 현장에 나가 수색 상황을 점검하고 수색 브리핑을 듣는 생활을 100일 가까이 반복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있는 ‘수색?구조를 위한 장비 기술 TF 회의’에도 꼬박꼬박 참석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링거를 맞으며 내일을 버텨낼 준비를 한다.

4월 17일부터 7월 11일까지 석 달간의 진도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작별 인사를 했던 한 실종자 가족은 “세월호 사고 흔적을 지워 내려는 움직임을 보면 목을 조여오는 기분이 든다. 가족을 못 찾은 것은 변함없는데 세상은 너무 빨리 잊으려 한다”고 말했다. 아직 바다에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오늘도 지친 몸을 이끌고 바다를 바라보며 울부짖는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진도 팽목항의 시계는 여전히 4월 16일에 멈춰 있다.

서복현 JTBC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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