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한포기없는 먼지길 뛰어온 우리 지루한 나날이지만 희망 잃지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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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인간은 인식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지루함도 함께 갖게 되었는가보다.
우리 주변에 산재한 많은 지루함들- 진학의 꿈을 버리지못하고 도서실에서 쭈그리고 앉아있는 재수생의 지루함, 병상에 누워 신음하는 환자의 지루함, 휴가를 기다리는 병사의 지루함, 「이란」에 억류되어있는 미국인 인질들의 지루함,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길 갈망하는 제적학생·해직 교수의 지루함, 복권을 기다리는 재야인사들의 지루함등 많은 사람들이 지루해하고 있노라 외쳐댄다.
그러한 많은 지루함 중에서도 특히 지금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정치발전일정에 대해 많은 국민들- 오랫동안 인내속에 살아왔으므로 지루함에 있어서 다른 어느 국민보다도 잘 훈련된 우리 국민들이 너무 지루하다고 한다. 작년말 경제성장에 상응한 정치발전을 갈구하던 우리의 소망은 당장에 실현되는듯 싶었으나 금년들어서 세월은 우리의 지루함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한채 오늘도 동녁에 해를 띄우고 서녘에 해를 지운다. 내일도 그런 24시간이리라. 모레도 마찬가지일게다. 이렇게 하다가 금년 한해가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닌지? 너무도 오랫동안 많은 것에 속임을 당해온 우리들이 돼서인지 생각하기조차 두려운 불길한 생각들이 우리를 더욱 지루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명석한 두뇌가 있고, 밭갈아 씨뿌릴 억센 손이 있고, 먼길을 걸을수 있는 튼튼한 다리가 있으며, 더구나 다시「캠퍼스」로 돌아오게된 우리의 정든 교수님과 친구들의 희망가가 우리 마음속에 그 깃을 접는한 지루할게 조금도 없다.
뽀얀 먼지가 일어나는 자갈길을 오래도록 걷고 풀잎 한포기 찾을수 없는 벌판을 숨 헉헉거리며 뛰어도 이제 우리는 지루하게 생각하지 않으리.
비가 마구 쏟아지는 날은 우산을 가진 기쁨으로 웃고, 눈보라가 휘몰아 칠때는 외투를 걸쳤다는 다행함에 지루함을 날려버리자.
이제 다시는 서로를 미워하지 말고 불신하지 말며 다같이 저기 보이는 기쁨과 환희에 찬 복지의 미래를 조용히 설계해보자.
그래도 지루하다고 여겨지면 춘원의 『무정』에 있는 다음의 귀절을 음미해보리라. 『어둡던 세상이평생 어두운 것이 아니요 무정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밝게 하고 유정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가멸케 하고 굳세게 할것이로다』라는. <장동훈 25세·원광대 경영학과 2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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