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족들 국회 국악공연 항의 … 정의화 의장, 마이크 뺏기고 봉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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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회 제헌절을 맞아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잔디마당에서 개최된 ‘열린국회 비전 선포식’ 행사가 세월호 유가족들의 항의로 중단됐다. 한 유가족이 정의화 국회의장(오른쪽)의 마이크를 빼앗고 있다. [뉴스1]

17일 오후 4시30분 국회의사당 본관 앞 잔디밭. 정의화 국회의장과 시민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앞으로 주말마다 국회 잔디밭을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것을 기념하는 ‘열린국회 비전 선포식’이 열렸다.

정 의장의 기념사가 끝나고 김민숙 명창의 공연이 이어졌다. 지난 주말부터 세월호 유족들이 국회에 들어와 있는 점을 감안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내용의 공연이었다. 그러나 공연 도중 행사장 주변에 세월호 유족 40여 명이 몰려들어 공연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용히 피켓만 들고 국회 경위들과 대치했지만 얼마 안 가 “세월호 특별법이 처리 안 됐는데 뭐 하는 짓이냐” “집어치우라”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유족들의 항의가 점점 더 거칠어져 행사가 불가능한 지경이 되자 오후 5시쯤 정 의장은 마이크를 잡고 나와 참석한 시민들에게 “오늘 기념식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양해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유족들을 향해 “법적으로 허용이 안 되지만 제가 여러분들이 국회에 들어올 수 있게 배려했는데 이러면 곤란하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자 유족 측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정 의장은 굳은 얼굴로 “국회의장한테 이러는 게 아니야”라고 말했다. 이에 반발한 유족 중 한 명이 정 의장에게 달려들어 마이크를 빼앗았고, 놀란 의장실 관계자들이 그 유족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뒤엉키며 몸싸움이 벌어졌다. 조금 뒤 정 의장은 경위들의 보호를 받으며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일부 유족은 “정의화 물러나라”고 외쳤다. 의장실 관계자는 “미리 유족 측에 이번 행사에 대해 양해를 구했고, 공연 내용도 진혼(鎭魂)의 의미였는데 오해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정 의장은 세월호 유족들의 농성을 감안해 이날 예정됐던 KBS ‘열린음악회’ 국회 녹화와 공군 특수비행단인 블랙이글의 축하비행을 취소한 상태였다.

 한편 이날도 여야는 세월호 특별법 합의에 실패했다. 특별법에 따라 꾸려질 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주는 문제가 끝까지 발목을 잡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문서제출·출석·동행 명령권뿐 아니라 조사위원회가 특별사법경찰관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다. 특별사법경찰은 판사가 발부한 영장을 집행해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조사위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건 “형사 사법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들게 될 것”이라며 완강히 반대했다. 대신 검찰에 특별검사나 특임검사를 두고 조사위원회의 요구 사항을 검사가 수사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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