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의총」은 사적으로 재지정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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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남원 만인의총의 사적지정 부활을 주장합니다.
만인의총은 정유재란 때 6만여 왜군을 맞아 성을 지키다 숨져간 1만여 호국의 영령들이 잠든 곳입니다.
이곳에는 장수와 군졸도 있고 등에 어린애를 업은 부녀자와 고사리손으로 돌을 나르던 아이들도 있읍니다.
나라를 지키는 일엔 남녀를 가릴 것 없고 어른과 아이들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본보기를 보여준 곳입니다.
3백만 전북 도민들은 춘향의 절과 만인의총의 충을 기리며 자랑합니다.
왜정 때 일본사람들은 만인의총이 심어주는 조국애를 말살하기 위해 의총이 있는곳에 역사를 짓고 우리들의 기억에서 내몰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썼었읍니다.
그러나 뜻있는 남원 유림들은 해마다 제사를 올리며 이곳을 보호하다 해방의 그날을 맞았던 것입니다.
해방 후 57년 2월1일 정부는 만인의총을 사적 102호로 지정했읍니다.
묘봉과 상석 밖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전북 도민들은 이곳을 성지로 여겼읍니다.
도민들은 만인의총의 성역화를 서둘렀고 63년 이곳을 참배한 고 박정희 대통령은 역사 부근에서 남원읍 향교리 왕제봉 아래로 이장해 성역화 하도록 했읍니다.
그런데 64년 문화재관리국은 만인의총을 임의로 옮겼다는 이유로 사적지정을 해제해 버렸읍니다.
만인의총보다 1년 가량 늦게 58년 5월22일 사적 105호로 지정된 금산의 칠백의총은 많은 국비지원을 받아 성역화가 이루어졌으나 이곳의 성역화 작업은 63년부터 17년이나 걸려 작년 11월29일 준공됐읍니다.
사업비는 국비 2억7천1백65만4천원, 도비 3억7천20만원, 군비 1억1천4백만원 등 7억5천6백여만원이 투입됐읍니다.
여기에는 전북애향운동 본부가 추진, 도민 모두가 참여한 헌수운동분까지 포함된 것입니다.
맨주먹으로 성을 지키다 숨진 1만여 군·관·민이 왕제봉 양지바른 곳에 편히 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방문화재라고 해서 사적만 못하다는 이유는 있을 수 없읍니다.
다만 절과 충을 기리는 전북 도민들에게 기리는 마음을 심어주고 영령들을 조금이라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만인의총의 사적지정을 주장합니다.
해마다 이곳을 찾아 선령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후손들이 3백82년만에 쉴 곳을 찾은 조상들을 자랑하면서 은연중에 피어오를 호국애를 당국에선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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