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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 선 세계 공산주의 운동 | 영 공산권문제 전문가 「어번」 박사에게 듣는다 | 장두성 런던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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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장두성=70년대를 통해 세계 공산주의 운동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는 크게 분열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소련 공산혁명의 정통성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중공의 독자노선, 「유러코뮤니즘」의 본질상의 수정노선, 동남아 공산정권간의 무력충돌, 동구권의 탈소경향 등 이 모든 변화는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이념적 단결이란 혁명 이래의 신화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가 80년대에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예진하기 위해 우선 모택동 사망이후의 중공에서의 변화가 어떤 깊이를 갖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4대 현대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중공 지도자들의 친서방 접근정책은 체제상의 자유화·다원화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가? 다시 말해서 모의 후계자들은 모가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막으려 했던 소위 「수정주의」 노선을 지향하게 될 것인가?

<중공 교조주의에 변화>
▲「어번」=참으로 흥미 있는 의문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적어도 지금까지는 중공이 정치적으로 자유화되고 있다는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전망을 단정적으로 부인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80년대를 내다보면서 이 문제가 계속 관심을 끌게 될 것이다.
최근 내가 중공을 방문했을 때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과학원 내 등소평에 가까운 인사들이 은밀히 학자들 사이에 한 문서를 회람시키고 있었다. 이 문서내용은 앞으로는 소련을 공격하는 글에서 「수정주의자」라는 용어를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여러 사람과 만나 이 문제를 거론했었다. 물론 이들은 처음에는 그런 문서가 돌고 있다는 사실조차 부인했다.
그러나 내가 계속 이 문제를 재기하면서 『당신들 자신이 이제 수정주의자가 되었으니 소련을 수정주의자로 몰아 세울 수 없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더니 마지못해 이를 시인했다.
중공 지도층들 스스로도 변화에 따른 논리상의 혼돈을 겪고 있음이 분명하다.
중공이 경제·외교면에서 과거의 완강한 교조주의적 태도로부터 탈피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치면에서 본질적인 변화가 오리라고 보는 것은 아직 무리다. 문혁 때에 비하면 약간의 통풍은 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서구 쪽에서 인식하는 민중이 주도하는 자유화와는 엄격히 구별되는 성질의 것이다.
-민중운동 아닌 당 주도하의 탈문혁 정도로 중공 내정의 변화를 규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러면 화-등 체제의 그러한 노선은 등의 사후에도 번복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는가?
▲그렇다. 중공 지도자들은 문혁 중 피해를 본 사람이 인구의 10%인 1억이나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도 문혁에 대한 반발이 광범해서 현 체제의 개혁이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등이 죽는다고 4인조 세력이 되살아날 가능성은 적은 것 같다.

<「브」 사후에도 정책 불변>
-중공의 변화가 모의 사망으로 유발된 것이라면 소련의 「브레즈네프」가 80년대 중 사망, 또는 퇴임할 경우 소련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있으리라고 예견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브레즈네프」의 후계자 문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정치국 내부에서 권력다툼을 유발해 왔지만 소련 지도층 내부의 정책상의 견해 차이는 중공에서처럼 그 폭이 넓지 않다. 거기다가 현 정치국원의 평균 연령이 70세이기 때문에 이들의 사고형식은 지극히 보수적인 점이 특징이다. 이들은 물론 2차 대전의 참상을 겪은 사람들로서 모험주의를 극히 경계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러니까 「브레즈네프」가 사망하더라도 현재의 동서 「데탕트」정책은 계속될 것이고 중·소 분규도 큰 변화 없이 지속될 것이다. 변화가 온다면 전후의 젊은 세대가 들어서는 90년대 이후가 될 것이다. 이 세대가 들어서면 보다 모험적이고 팽창주의적인 정책으로 방향전환을 할지도 모른다.

<유고가 3차전 시발지>
-공산권 지도자의 사망을 이야기하는 김에 「티토」의 사망 얘기도 해보자. 「유고」는 동서관계의 회색지대인 셈인데 이 때문에 「티토」가 사망하면 소련의 영향권으로 「유고」를 다시 끌어들이려는 소련과, 「유고」의 독자노선을 그대로 유지시키려는 미국간에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설도 나돌고 있다. 「티트」 사망은 3차 대전의 시발점이 되겠는가?
▲「헤케트」 장군이 쓴 『3차 대전』(79년 봄 간행)의 「시나리오」가 바로 그런 것인데 나도 이에 동감이다. 앞으로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분규점은 중동과 「유고」다. 「티토」가 죽고 나면 소련이 개입할 좋은 기회를 제공하게 되어 있다.
「유고」를 보는 소련의 눈초리는 두 가지 목표에 집중되어 있다. 그 하나는 전략적인 것으로 「유고」를 소련 영향권에 접수시킴으로써 「아드리아」해의 항구를 손에 넣어 「나토」군의 측면을 압박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고」에 소련식 체제를 재도입시킴으로써 동구의 이탈현상을 방지한다는 것이다.
-「키신저」가 미 국무장관이던 시절에 「조넨펠트·독트린」이란게 발표된 적이 있었다. 내용은 동구제국이 소련에 대항하는 사태가 일어나면 소련 지도자들이 궁지에 몰리게 되어 소련 외교정책이 다른 방면에서 호전적으로 전환하게 되고 그 결과 서방이 피해를 볼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미국의 대동구권 정책은 이 지역에서 반소활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소련을 도와줘야 된다는, 「오데르-나이세」선의 동결 같은 냄새를 풍겼다. 이 정책이 지금도 유효하다면 「유고」에 대한 소련개입이 있을 경우 미국이 이를 방관하지 않겠는가?

<소, 나토 측면 압박 노려>
▲「조넨펠트」는 후에 이 보도를 부인했었다. 그러나 56년의 「헝가리」 사태, 68년의 「체코」 사태에서 보듯이 미국이 「오데르-나이세」선 저쪽의 혼란에 개입할 생각이 없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입증이 되었다. 그러나 소련에 대해 독자노선을 이미 굳히고 서방에 친근한 「유고」와 「루마니아」의 경우는 그런 원칙에서 제외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현재 서방측 입장은 동구권이 내정면에서 소련으로부터 이탈해서 서구형으로 접근하는 것을 격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들이 어떤 선을 넘을 경우 소련은 틀림없이 개입할 것이고 서방으로서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이 경우도 「유고」와 「루마니아」는 예외다.
-상황의 논리로 봐서 80년대에 또 다시 「헝가리」 「체코」 사태와 같은 류의 소련군의 동원사태가 있으리란 이야긴가?
▲그렇다. 「폴란드」가 다음 차례일 것 같다. 경제가 파탄해서 국내불만이 절정에 달해 있는데 실질적으로 「폴란드」에는 공산당의 「기에레크」 정권과 「카톨릭」교회라는 2원적 정부체제가 형성되어 있다. 최근 교황의 「폴란드」 방문이 입증했듯이 교회의 영향력은 정부의 그것을 압도하고 있다.
국민의 95%가 독실한 「카톨릭」신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떤 반정부·반소 소요가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소련은 이를 진압하겠지만 굉장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유러코뮤니즘」 제자리>
-동구권의 반체제 운동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체코」의 77헌장「그룹」, 「폴란드」의 『날으는 대학』 등 용감한 소수인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탄압이 심해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의 중요한 흐름은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단결성 와해 내지는 소련 공산당의 지배체제의 붕괴로 규정지을 수 있겠는데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는가?
▲소련 세력권에 묶여있는 동구를 제외하면 세계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소련의 지배는 이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종말을 고했다. 사태가 반전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유러코뮤니즘」 운동이 80년대에는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는가?
▲「유러코뮤니즘」은 심각한 내부모순을 안고 있어서 이 때문에 성장을 못하고 있다. 한 마디로 그것은 사회민주주의의 형식과 「레닌」주의의 본질사이에 개재해 있는 깊은 꼴짜기다. 「유러코뮤니즘」은 공산주의를 서구 의회민주주의 전통속에 이식하려는 시도인데 「프롤레타리아」 독재·중앙집권적 통치체계 등 「레닌」주의의 속성들을 배제하면서 공산주의 운동을 한다는 그들의 주장을 국외자뿐 아니라 자기들 추종자들까지도 잘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유러코뮤니즘」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원칙이 확립되지 못하고 있고 그들 스스로도 「나토」·노조운동·정권교체 등 중요한 문제에 대해 통일된 태도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유러코뮤니즘」이 하나의 실험으로 끝난다고 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공산혁명이 미개발국인 소련에서 시작된 것은 「마르크시즘」의 왜곡을 가져왔다고 보고 「마르크스」가 생각한 공산혁명의 본고장인 서구에서 공산혁명을 실현해 보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그 현실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모색을 포기하지 않는 한 「유러코뮤니즘」은 계속된다고 봐야 한다.

<북괴의 폐쇄성 이해난>
-모든 공산국가가 조금씩은 변하고 있는데 유독 북한과 「알바니아」만은 「스탈린」주의의 가장 부정적 속성들을 고집하고 있다. 이들도 변화의 바람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없는가?
▲북한은 공산세계의 기준으로도 지독하게 폐쇄적이어서 그들의 의도가 어떤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김일성의 개인숭배 같은 것도 왜 그런 것을 하는지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전략적으로 보면 북한은 동면기에 들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중공과 소련이 미국관계를 고려해서 북한의 어떤 모험주의도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독자적인 행동을 취할 가능성은 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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