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기 법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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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오랫동안 들(야)에 있으면서 많은것을 느꼈어요.』
40대중반에 검찰을 떠났다가 60고개를 넘어 법무행정의 총수로 복귀한 백장관은 재야변호사생활을 했기 때문에 일반국민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했다.『한번은 국선변호인으로 선임됐을때예요. 14세난 소년이 배를 굶주리자 자기보다 2세어린 국민학교생의 도시락을 빼앗아 먹었다고 구속기소된 사건을 맡았어요.』백변호사(당시)는 이런정상의 범죄로 이제 갓형사미성년자(만14세)를 벗어난 어린이가 구속기소된데 놀랐다고 했다.
담당검사는 기계적으로「현사미성년자가 아니고 강도행위는 분명하니까」구속기소하겠지만. 『이러니 일반은 검사라면 피도 눈물도 없는사람으로 두려워하는게 아닙니까-.]
백장관은「법이란 양식」이라했다. 한사람을 처벌함으로써 9사람이 잘못을 깨닫도륵 해야한다고했다. 그래서 취임 제1성이 『검사는 소신을 갖고 스스로의 재량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라』는 것이다. 이른바 . 기소편의주의를 최대한 활용한다는것.
스스로를 낙천주의자라할만큼 쾌활하고 모나지않은 성격이나 한번 고집을 부리면 좀처럼 고집을 꺾지 않는 뚝심으로 유명하다.「묵은 장맛이 좋다」는 식으로「옛것」을 좀처럼 버릴 줄 몰라 혜화동의 구식 한옥에 30년이상 살아오고있고, 변호사 사무실 직원도 최소한 15년씩은 넘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같은 온고의 정도 법무항정에 대해서만은 「NO」다.
『부정부패의 처리문제는 해묵은 과제이나 아직까지 뿌리뽑혀지지 않았고 이와 관련해 관기가 바르지 못한것도 법무부가 주도해야할 문제로, 이런것들은 국가안보의차원에서 엄하게 다스려져야 합니다.』
백장관은「호미로 막을일을 가래로 막아야」되는 후회스런 일이지만 자신의 재임기간중 이문제만은 어떤일이 있어도 단호히 뿌리를 뽑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부하검사에게도 꼭 존칭을 쓰길래 오랫동안 변호사생활을 한때문이냐고물으니 성격탓이라고 했다.
관직에 있을때를 빼고는 자가용을 탄적이 없었는데 최근 주위에서「궁상떤다」는 놀림에 작은차 1대를 샀다. 그나마 대부분 차고에 넣어놓고「버스」를 타고 시청앞변호사 사무실까지 출·퇴근했다. 1주일에 한번정도 타는것은「차를 버릴까봐」서다. 아직까지는 두다리에 힘이 있고, 그보다는 이것도 「성격탓」이란다.
『검사가 피의자앞에 군림하는 자세는 버려야합니다. 전임장관때부터의 역점사업인「검사의체질근대화」작업은 더욱 강하게 추진할 작정입니다-.』「근대화」를 몇차례 강조했지만 정작 장관 자신은 결혼 일년동안 한번도 월급봉투를 부인에게 준적이없고 그때그때 용도를묻고 적당히 주는 전근대적민주주의자라는게 측근의 말이다. <김종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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