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효의 재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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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약은 병올 물리치고 건강과 생명을 유지하는데 사용되는 귀중한 물질이긴 하지만, 병을 물리치는 주체는어디까지나 생체본언연 자연치유력이고 약은 그 보조수단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약을 마치 질병치료의 전부라고 생각하는데서 약의 오용과 남용은 시작된다.
게다가 약품의 대량 생산과 판매 경쟁에 따른 광고의 홍수속에 소비자는 약을 마치 식품이나 옷가지처럼 일종의 생활필수품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기도 하다.
보사부가 75년부터 벌이고 있는 약효재평가 사업은 허가된 약품의 효능과 효과를 재검토하여 유효성에 대한 근거가 없는 것은 삭제하고 부작용과 주의사항을 보다 명확히하여 안전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의약품의 오·남용에 의한 약해로부더 국민을 보호하자는데 그 뜻이 있음온 이해할만한 일이다.
보도에 따르면 보사부가 작년에 실시한 약효재평가에서는 1천93종 의약품의 2천58가지 약품 가운데 44%인 9백6가지가 효능을 적절치 않게 표기하고 있어 이를 정정했다 한다.
해마다 이처럼 많은 약품효능이 삭제되는 현상을 두고 국내 제약업계의 부실이나 양식을 벗어난 행위 탓이라고 한마디로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유효한 것으로 보이던 약품 가운데서도 의학및 약학의 발달에 따라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고, 반대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부작용이 발견될 수도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재평가 결과는 시중에서 판매된 의약품 가운데 상당 부분이 과장된 효능을 표시해 온 반면 부작용과 주의사항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소홀했던 것으로 나타났음을 간과할 수 없다.
4∼5개의 한정된 증세에만 유효한 약품을 마치 만병통치약으로 착각할 정도로 숱한 효능을 가진 양 선전해 왔고, 병을 고치기는 커녕 생명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부작용울 부러 표시하지 않은 경우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일부 비양심적인 업자 가운데는 허가 때보다 함량을 반이상 속여 시판해 온 경우도 비일비재했었다.
의료보험제 실시 후 많이 줄기는 했다지만 환자의 상당수가 병원보다는 약국을 찾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춰볼 때 이같은 부도덕한 의약품 판매행위는 반드시 근절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행위가 묵과되는 한 국산 약품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은 한결 깊어진다는 것을 특히 제약업계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국산약품에 대한 불신은 반사적으로 외제약에 대한 선호도를 높여 일부 악덕 의약품 수입 업자들이 멋대로 약효룰 과대표시 하거나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 등 참괴한 일마저 빚게 하지 않았던가.
약효재평가제 실시 이후 우선 의약품들의 만병통치식 과대 선전에 일단 제동이 걸리게 된 것만은 경하할 일이다. 그로써 소비자들이 과장 선전에 속아 약의 오·남용의 위험에 끌려들 가눙성이 그만큼 줄어들게 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국은 이 제도의 보다 효율적인 운용에 한결 노력해야 할 것이며, 제약업계 또한 자율적으로 자기제품에 대한 재평가작업을 통해 회사의 신용을 높임으로써 국민들을 약해로부터 보호하는데 앞장서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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