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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2000년의 비극」그린 지하소설|중공서 폭발적 인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좌파의 재집권가능성에 대해 대다수의 중공인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는 가운데 얼마전 한 반체제인사가 그같은 중공인들의 우려를 반영하는 『서기2천년에 일어날수 있는 비극』이란 단편소실을 지하간행물에 발표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필명을 소명이라고 한이 지하작가는 1998년12월 어느날 인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온 한 지도자(등소평지칭)의 병사를 계기로 마침내 극좌파가 정권을 잡고 암흑천지로 다시 빠져드는 서기2천년의 중공을 그리면서 오늘의 북경실상을 적나나하게 파헤쳤다.
그는 좌파가 집권한 2천년의 북경에 22년전 그 자리에 나붙었던 한 대자보를 재현시키는 수법을 통해 중공인들이 피부로 늘 느끼는 좌파의「롤·백」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중공인들의 민주사회에 대한 열망을 극명하게 묘사했다.
이 소설이 실린 지하간행물 「북경지춘」5월호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됐고 시중에서는 원가의 몇배로 전매됐다. 「북경지춘」편집실은 열화같은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전문을 「민주의벽」에 대자보형식으로 내다 붙여야할 정도였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간추리면-.
1998년12월 어느날 한 지도자가 병사한후 1년간 많은 지도자들이 잇따라 병사, 또는 교통사고로 숨져 깊은 의혹을 던진다.
권력층의 변동이 있겠다는 내외의 추측속에 진상을 밝히라는 시민들의「데모」가 줄을 잇자 이듬해 12월l일 중공당은 유관부서와 연합하여 진상조사에 착수한다.
중공당은 11일 정치국 개조를 선언하고 진상조사결과 미국과 아주 밀착한 모 지도자를 우두머리로 하는 중앙과 지방의 많은 고위간부들이 연루된「모반집단」을 적발했다고 발표한다.
환상의 해, 서기 2천년이 도래했다. 새 지도층은 모반집단의 기반을 뿌리뽑기 위한 일대 대중운동을 명령하고 각종개혁을 단행, 중앙집권을 강화한다.
45세이상의 사람들이 다시 벙어리노릇을 하는 가운데 청년들은 모어록을 들고 다시 광분한다. 이런 삭막한 형세속에서 12월2일 「민주의 벽」에는『22년전 이곳에 불었던 한 대자보』란 제목의 대자보가 출현, 천지를 진동시킨다.
이 대자보는 중공의 정치가 변화무쌍하여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고 전제하고 그 원인은 9억 인민의 운명이 지도자 한 두사람의 수중에 있기때문이라고 분석하면서 철저한 민주화를 촉구한다.
대자보의 작자 여계가 5일 군중앞에 얼굴을 내밀자 장안가는 순식간에 군중들로 메워졌다. 50여세의 여계가 그 대자보의 내용을 강연한지 얼마 안되어 경찰이 덮쳤고 그는 혼란한 틈을 타 도망친다.
그러나 그날밤 북경일대에는 그 대자보를「프린트」한 「비라」가 살포되고 6일 여계는 마침내 한「아파트」에서 체포된다.
그는 법정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중공인들의 열망이 어떠한 것이며 당국은 그런 염원을 어떻게 기만하고 탄압했는가에 대한 22년전의 대자보 내용을 도도하게 불어제낀다.
2천년의 마지막날 종신형에 처해진 그는 2001년9월 어느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부인도 52회 건국기념일에「민주의 벽」앞에서 분신자살로 남편의 뜻을 좇는다.
그날하오 「민주의벽」에는 또 70년대말에 그곳에 붙여졌던 『하늘은 높고 높으며 사람은 아득하게 많은데 우리나라에는 민주주의가 언제 오려나』라는 대자보가 다시 등장한다.
1년후 그곳에는 헤아릴 수 없는 생화가 바쳐지고 한 정치국원도 헌화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날밤 인민대회당은 휘황한 불빛이 비치고 지방에서 올라온 중무장한군대가 삼엄한 경비를 한 가운데 중앙공작회의가 열린다.【홍콩=이수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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