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분 신용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학생에게 고사를 실시하면서 예상점수를 적도록 하였더니 성적이 좋은 학생일수록 고사점수를 적중시켰거나 밑돌면서 접근시켰고, 성적이 나쁜 학생일수록 고사점수를 웃돌면서 크게 벗어나게 예상했더라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능력이 낮은 학생일수록 능력수준보다 높은 기대수준을 갖고 있다는 말이 된다. 객관적인 판단의 결여로 자기를 모르고 있다고나할까?
「포부심리학」의 용어를 빌면 기대수준이 눙력수준을 뛰어넘고 있는 경우 욕구가 좌절되어 실의에 빠진다고 한다. 오늘날 기대수준의 혁명적 상승으로 인하여 각종 범죄가 일고 있음을 본다. 일컬어 병적 기대라고나 할까?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적도선에서의 욕구는 필요하다. 물질적인 욕망만하더라도 적당한 욕구는 필요한 것이다. 지나친 욕심은 경계되어야한다. 욕망은 한이 없어 욕망대로 따라가다보면 허욕이 생기기 마련이고 이 허욕을 채우려면 자연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잃게 마련이다. 이때 윤리도 도덕도 없고 부모형제도 국가 사회도 보이지 않는다. 직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제자리가 있는 법이다.
제자리를 알고 제자리를 지킬때 사회의 번영이 있다.
제 분수를 지키는 것을 한문에서는 수분이라고 한다. 수분은 질서와 펑화와 번영의 원리다. 욕심이 적으면 마음이 편하고 사람을 대하기가 떳떳한 것이니, 사람이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봐서 부끄러움없이 살고자할진대 자기 분수를 넘어서는 욕심은 버려야 할것이다.
우리 주변을 돌아본다.
돈·감투·권력…등 기대수준의 상승으로 포화되어 있다. 인간의 기대체제는 스스로가 자명한 것으로 알듯이 그렇게 자명한 것은 아닌가 보다. 분수를 생각지않은 물질적 허영과 욕망에 병든 정신상태는 남이 호화롭게 사는 것을 무작정 따라가는 사회풍조를 본다. 돈 5백만원에 세명의 존귀한 생명을 파리 죽이듯 살해한 골동품상 사건은 상기시키고싶지도 않다.
감투자리가 생기면 내가 무엇을 할수 있는가가 아니라 수단을 가리지 않고 감투를 노린다. 원해야 할것을 원치 않고 , 원해서는 안될것을 원한다.
노력에 앞서 단번에 치부를 노리는 허욕이며 실력을 배양하기에 앞서 높은 자리를 탐내곤하는 일들이 모두 사회를 혼탁하게하고 결국은 자기자신마져 존립할수 없는 경지의 함정으로 빠지고 만다. 공자님은 이것을 욕속부달이란 말로 경계하였다.
기대와 실제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것. 실의 좌절해 버리는 것도 옳지못하거니와 수단을 가리지 않는 기대충촉은 더욱 옳지않다. 자기행동으로하여 사회에 미칠 영향을 예견하여 행동하는 자기통어의 지혜가 아쉽다. 소박한 욕망은 자기 능력과 위치와 사명을 확인하고 반성하며 여과하여 점진적으로 여건을 극복하고 개선하는 신념이 바람직하다.

<제주애월상고교장> ▲건국대행정대학원졸업▲대한교련이사▲출판문화협회선정모범장서가▲논문 『한국장학행정의 근대화과정에 관한 논고』외 다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