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곡수매가 22% 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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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가마당 3만 6천 6백원의 올해 추곡수매가는 어차피 농민들에게도, 정부로서도 만족스런 수준일 수 없는 「딜레머」를 나타낸 것이다.
정부로서는 경제의 안정을 과제로 안고 있는 만큼 매가 지지의 폭을 최소화시키려는 일관된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런 측면에서 22% 인상은 과부담일 수 있다. 최근 수년간 계속 인상율을 낮추어온 추세에 비추어서도 다소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이례적」인 인상율은 어디까지나 정부의 입장에서만 그렇다는 점이 추곡가 책정의 「아이러니」다.
생산자인 농민에게는 22% 인상율이 충분한 생산비 보상이 되기엔 여전히 미흡할 수 있다. 지난 해의 도매물가 상승율이 공식통계로도 이미 22%나 올랐다는 사실은 이런 생산자측의 불만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
하물며 증산을 고취하기 위한 「인센티브」로 받아들이기에는 더 많은 의문을 남길 수 있다. 현실에서의 재정과 곡가는 이처럼 건널 수 없는 강을 사이에 두고있는 것이다. 추곡가의 결정이 해마다 진동을 겪게 되는 것은 이처럼 깊고 건너기 힘든 강을 정책당국이 과소평가하는 때문이다. 추곡수매가를 재정형편과 조화시키는 일이 근원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지난한 일이라면 차라리 명분에 치우친 줄다리기식 타협이 오히려 비생산적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재정건전화냐 주곡자급이냐는 어떤 측면으로 보아도 타협과 조정으로 근원적인 해결이 가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정책우선순위를 분명히 선택하고 나머지는 그에 보완하는 조정수단을 통해 달성하는 편이 더욱 현실적이다. 지금처럼 재정의 형편에 따라 주곡정책을 희생시켰다가 수급불안이나 다른 비경제적 이유로 다시 가격지지를 강화하는 불안정한 곡가정책은 생산에도 악영향을 미칠뿐 아니라 재정건전화에도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농업생산, 특히 주곡생산에서는 장기적 전망과 생산기반의 안정으로만 증산이 보강되는 보수성이 가장 큰 것이 그 특징이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심각한 천재와 병충해가 겹친데다 농업생산의 각종 비목이 급격히 상승, 주곡생산 여건은 그 어느 해보다도 나빠진 해였다. 추곡가 지지의 점진적 후퇴로 생산의욕마저 최근 수년간 적잖이 저상되고 있는 현실을 결코 가벼이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추곡가의 신축성이 아니라, 장기적인 생산여건의 안정이므로 확고한 정책의지의 천명이 시급하다. 최소한 주각만큼은 정부가 책임지고 생산을 지지하겠다는 신뢰를 심어주는 일이 중요하다. 그에 따른 재정의 부담과 경직화문제는 재정일반에서 흡수할 수 있어야한다. 일반회계에서의 잉여로 자체 흡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또 그것은 현실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재정의 여타부문에서는 경직성을 온존한채 양곡기금만은 비경직적이어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흔히 일본의 과도한 주곡가 지지정책의 맹점과 후유증을 교훈처럼 제시하는 경우가 있어왔다. 그러나 지금의 주곡자급도나 국내생산기반의 현실좌표를 직시한다면 양국의 거리는 아직도 엄청나다.
일본의 경험은 하나의 교훈일수 있으나, 그 거리도 함께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재정건전화나 양곡기금운용개선을 저곡가 정책으로만 연관지으려는 정책구상은 너무도 막역한 자세다. 기금운용개선은 우선 재정안에서 해소하는 길을 찾아야 하며, 방출가 인상 등은 어디까지나 차선의 대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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