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정원정책을 재론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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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교부는 80학년도 대학신입생 정부를 올해보다 1만7천5백명이 늘어난 11만6천9백명으로 확정 발표했다. 내년도 대입정원폭이 올해의 2만7천9백20명보다 약 1만명 정도가 줄어든 이번 정원조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인문 대 자연의 비율이 작년의 47대 53에서 50.5대 49.5로 역전되고 서울시내 소재 대학의 증원이 억제되어 지방편중현상이 더욱 심화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 동안 『대입정원의 증원이 이공계에 편중된 것을 둔화시키고 경영관리분야의 전문인력의 수요가 늘 것에 대비한 것』이라는 당국자의 실명이지만, 『기술혁신만이 우리의 살길』 이라는 명제가 어느 때보다도 호소력 있게 제창되는 마당에 인문계 고급인력이 자연계보다 더 많이 필요하다고 보는 근거가 어디 있는지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다.
물론 올해의 이공계 정원을 대폭 증원한 후 교수 및 시설이 뒤따르지 못해 홍역을 치렀다는 점을 감안한다해도 갑자기 자연계보다 인문계정원이 더 늘어날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 특히 정부가 불과 1년전에 기업인의 교육참여를 적극 권장해놓고 일반의 신설중제을 인가하지 않은 것만 봐도 교육행정이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다.
대학입학의 폭발적인 수요는 물론 국민소득향상에 따른 자연스런 추세이기도 하지만 고등학교만을 졸업해서는 취업하기가 지극히 어렵고 다행히 취직을 한다해도 학력의 벽으로 적잖은 차별대우를 받고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학입학에 실패한 재수생들의 탈선·비행 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를 유발하고 있는 사실 또한 대학의 즙은 문을 더욱 넓히도록 촉발시킨 역력요인이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한국교육이 안고있는 특수여건과 고급두뇌를 필요로 하는 국가적 요구를 충분히 감안한다해도 우리나라가 과연 해마다 몇 만 명씩의 대학인구를 꼭 늘려야 하며 그것을 뒷받침 할만한 재정적 여력이 있겠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치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대학을「엘리트」교육기관으로 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개방적인 대중고등 교육기관으로 할 것인지 분명한 성격설정부터 해놓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모든 면에서 양적 발전에 못지 않게 질의 충실에도 머리를 돌려야할 때를 맞고있다. 산업체에서조차 제품의 고급화가 당면과제로 되고 있는데 하물며 교육에 있어서랴.
그렇다면 고등교육인구를 양산만 해놓고 재학기간중 그 질의 정둔화를 위한 뒷받침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더욱이 졸업후 이들을 받아들일 소지를 생각지 못한 정원확대만을 되풀이한다면 이처럼 큰 국가적 낭비는 없을 것이다.
정부가 이른바 「장기인력수급계획」에 따라 최근 수년간 계속 대폭적인 대학정원 확대정책을 추구하고 있지만 그에 수반되어야할 교수요원의 확보, 시설충실화를 위한 투자 등 재정적 뒷받침을 해주지 못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 범연히 넘겨보고만 있을 것인가.
고등교육의 장구한 역사적 배경을 지닌 선진국에서조차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나 졸업생의 취업난 등이 사회 문제화되고 있는 게 작금의 실정이 아닌가.
특히 정부가 이번 정원조정에서 서울시내 대학의 증원을 억제한 것은 수도권 인구억제 등 당면목표를 위해 국가백년대계라고 하는 교육의 질적 발전이라는 본질적 목표를 외면한 본말두제를 범한 것이란 평가를 면할 수 없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교수진과 시설요건을 갖추고있는 서울의 대학을 외면하고 무작정 지방대학정원만 늘린다는 것은 적어도 교육적 관점에서는 마땅히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비록 고급기술인력의 확보가 중요한 국가적 요청이라 하더라도 그 양성이 과연 대학교육을 통해서라야만 하느냐에 대해서도 명확한 정책정립이 있어야 할 것이다.
본난이 몇 차례 주장한바와 같이 상부부에는 비교적 소수의 정선된 「엘리트」를 위한 대학을 두고 그 밑에 기술인력확보를 위한 기예전문대로 이원화함으로씨 불필요한 고등교육인구의 팽창을 억제하는 것만이 바람직한 해결책이라고 본다.
이와 함께 각 직장에서도 학력보다는 능력위주의 급여체제를 제도화하고 구미제국처럼 기술·기능인들이 그 자격에 따라 사회적으로 우대 받는 풍토를 정착시키는 등 종합적인 시책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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