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P에 가면 의자랑 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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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공작’이란 뜻의 피코크 체어(태국, 수완 콩쿤티안). 우아한 등받이가 특징이다. [사진 DDP]
‘조랑말’이란 뜻의 포니 체어(핀란드, 이에로 아르니오·사진 위). 어른의 동심을 자극하는 발상이 돋보인다, ‘Rm 58’(리투아니아, 로만 모젤레프스키·사진 아래). 풍성해보이는 상체와 가느다란 다리가 긴장감을 준다. [사진 DDP]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지하 2층 조형계단 밑. 이곳에서는 날마다 재미있는 풍경이 벌어진다. 관람객들이 팽이처럼 생긴 의자에 천장을 바라보고 앉아 의자가 사방으로 기우뚱거릴 때마다 신기해하며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의자는 빙글빙글 돌며 금방이라도 옆이나 뒤로 넘어갈 듯해 그곳을 지나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구경한다. 점잖은 성인 관람객을 순식간에 놀이동산을 찾은 어린이처럼 만들어버리는 이 의자, 영국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이 디자인한 ‘스펀 체어’다.

 DDP에 세계적 디자이너들이 만든 가구가 쏟아져 나왔다. 전시장 한 곳에 나란히 진열해 눈으로만 보고 끝나는 전시가 아니다. 관람객이 직접 앉아보고 만지며 체험할 수 있는데, 세계의 손꼽히는 디자인 가구를 곳곳에 배치해 놓았다는데 의미가 있다. DDP가 ‘일상 속 예술’을 내걸고 개관 전부터 기획해 디자인가구 소장품(컬렉션)을 공개한 이른바 ‘열린 전시’다.

 DDP 소장품은 총 30개국 112명 디자이너의 작품 1869점이다. 이중 일반 관람객이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는 것이 487점에 이른다. 특히 의자가 가장 많다. 전시장에서 전시장으로 발길을 옮기다 우연히 만나고,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벤치와 의자가 알고 보면 흔히 접하기 어려운 오리지널 작품이다.

 이중엔 파격적인 디자인이 적잖다. 대표적인 예가 핀란드 디자이너 이에로 아르니오가 디자인한 조랑말 모양의 의자 ‘포니’(pony·조랑말)다. ‘앉는다’는 것보다 ‘탄다’는 표현이 더 적합해보인다. 언뜻 어린이를 위한 장난감으로 오인받지만 성인 신체에 맞게 제작됐다.

덴마크의 루이스 캠벨이 천을 사용해 만든 ‘시소’ 의자 역시 모양과 소재 면에서 의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다.

 동양 디자이너가 만들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의자도 눈에 띈다. 일본의 다도(茶道)에서 영감을 받은 의자 ‘티 세러모니 체어’(히로키 다카다), 지붕이 달려 있어 아늑한 공간을 체험하게 해주는 ‘지니 하바나 체어’(토니 곤잘레스·필리핀)가 대표적이다. 한국 작품으로는 시멘트를 재료로 한국화의 멋을 재현한 ‘이머전스 스툴’(김정섭)을 간송 소장품 전시장 앞에서 볼 수 있고, 금속과 천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서정화 작가의 스툴은 배움터 2층 둘레길에서 만날 수 있다.

 컬렉션 중에서 가장 고가의 작품은 DDP 설계자인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하고 한국에서 제작한 안내 데스크(알림터 1층 외 4곳)다. 건물과 조화를 이루는 곡선 디자인이 돋보인다. 여러 부분을 조립했지만 마치 대리석을 깎아놓은 듯 이음새가 보이지 않고 매끈한 게 특징이다.

 총 30여 억원이 들어간 컬렉션 준비 과정에는 디자이너 은병수(은 카운슬 대표·2009년 광주 비엔날레 총감독)씨와 가구 컬렉터인 김명한 aA뮤지엄 관장이 각각 동·서양 컬렉션 디렉터로 참여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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