헵번이 먹은 134년 전통 젤라또 … 해태가 인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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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제과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134년 전통의 이탈리아 아이스크림(젤라또) 기업을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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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태제과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1880년 설립된 ‘빨라쪼 델 프레도(Palazzo Del Freddo·이하 빨라쪼)’를 인수하는 계약을 5일(한국 시각) 맺었다. 로마에서 열린 계약식에는 해태제과 신정훈(44) 대표와 빨라쪼의 다니엘라 파씨 대표가 참여했다. 빨라쪼는 지아코모 파씨가 설립해 4대째 내려오는 가족 기업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젤라또 가게로, 궁중 요리사 였던 2대 지오바니 때부터 ‘젤라또의 황제’라는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53년 개봉한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스페인계단 위에서 빨라쪼를 먹는 장면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현재의 매장과 젤라또 공장은 1928년 자리잡은 곳인데,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에게도 꼭 들러 젤라또를 맛봐야 하는 곳으로 꼽힌다.

 장인 정신으로 만드는 젤라또지만, 이탈리아 로마 본사의 단독 매장 한 곳을 제외하면 한국에만 매장이 있다. 오너인 파씨 가문이 상업적인 확장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한국엔 2002년 첫 진출해 2003년 압구정동에 1호 매장이 생겼고, 2008년 해태제과가 한국 사업권을 인수했다. 이탈리아 본사로부터 제조 노하우와 브랜드 운영권 등을 받아 전국에서 프랜차이즈 형태로 63곳을 운영하고 있다.

해태제과 신정훈 대표(오른쪽)와 이탈리아 빨라쪼 델 프레도(Palazzo Del Freddo)의 다니엘라 파씨 대표가 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빨라쪼 본사에서 인수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 해태제과]

 빨라쪼 인수는 지난해 3월 이탈리아 본사가 먼저 해태 측에 제안했다고 한다. 해태 측은 이미 프리미엄 젤라또 아이스크림의 가능성을 보고 해외 브랜드 사용권이라도 확보하려던 참이어서, 인수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해태 측은 “빨라쪼를 운영하던 파씨 가문이 ‘스무디킹’이나 ‘배스킨 라빈스’ 같은 글로벌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키우려면 가족 기업으론 힘들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유일한 해외 진출 국가인 한국의 해태 제과가 짧은 시일 내에 매장을 늘린 노하우를 인정했다는 얘기다. 또 빨라쪼 본사는 매년 경영진과 기술진을 한국으로 보내왔는데, 전통 젤라또 제조 노하우를 배우려고 애쓰는 해태제과 임직원들의 성실성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태제과가 해외 기업을 인수한 것은 2005년 크라운제과에 인수된 후 처음이다. 신정훈 대표는 “그간 안정적인 경영을 주로 했다면, 빨라쪼 인수를 계기로 앞으로는 글로벌 시장 공략에 공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빨라쪼 브랜드로 2020년까지 국내 매장 수를 200개로 늘리고, 해외에도 200개의 신규 매장 개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단 이탈리아를 거점으로 한 유럽 지역, 그리고 일본·중국 등 아시아 지역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해외 브랜드를 들여와 운영하다가 역으로 본사를 인수하는 사례는 최근 몇년새 꾸준히 늘고 있다. 2012년 7월 스무디킹코리아가 글로벌 본사를 인수했고, 휠라코리아도 2007년 이탈리아 본사를 인수했다. 프랑스 잡화 브랜드 루이까또즈를 수입하던 태진인터내셔널과 독일 브랜드 MCM을 수입하던 성주인터내셔널이 본사를 인수한 것 등도 성공 사례로 꼽힌다. 남영비비안도 수입·판매하던 프랑스 란제리 브랜드 바바라를 인수했고, MPK그룹도 일본에서 출발한 미스터피자 상표권을 인수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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