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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내시 모기’가 모기 박멸 특효 … 생태계 망칠까 투입 멈칫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말라리아를 옮기는 중국 얼룩날개모기. 피를 더 빨기 위해 걸러낸 피를 내보낸다.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이는 동물은 무엇일까? 우선 떠오르는 동물은 악어와 독사다. 하지만 이들보다 훨씬 많이 사람 목숨을 뺏는 동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다. 사람보다 더 위험한 놈이 있다. 모기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스(SARS,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바이러스 사망자가 전 세계적으로 1000명 미만인 것에 비하면 말라리아·황열·뎅기열 등 모기가 옮기는 병으로 숨지는 사람은 매년 70만 명 이상이다.

우주선으로 사람을 달나라에 보내는 일은 놀랄 뉴스도 아닌 최첨단 과학시대다. 그런 인간이 체중이 2㎎에 불과한 모기에게 당하고만 있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지만 쉽게 풀지 못하는 인류의 숙제다. 미국의 IT 사업가 빌 게이츠가 20억 달러의 기부금을 제공, 모기로 인한 말라리아 퇴치를 공언한 이유이기도 하다. ‘모기보고 칼 뺀다’는 속담처럼 모기에게 인간이 큰 칼을 빼 든 셈이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모기가 옮기는 뎅기열로 인해 필리핀에서 200명 이상이 숨지고 해외여행 도중 뎅기열에 감염된 한국인이 두 배로 급증했다는 뉴스도 나왔다. 현지 풍토병이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닌 것이다. 이번 여름에 특별히 해외여행 계획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모기에 대한 대비는 필요하다. 국내에서도 말라리아 환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암모기, 이산화탄소로 사람 감지해 공격
‘모기와의 전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태고적부터 있었다. ‘작은 파리’ (quito, mos)란 의미인 모기는 1억7000만 년 전에 등장해 동물과 같이 지내다가 200만년 전부터 인간과 동거를 시작했다. 이후 인간은 ‘모기와의 전쟁’에서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있는 신세다. 3500여종에 달하는 모기들 중 동물이나 사람을 무는 모기는 모두 암놈이다. 수놈은 식물 즙을 먹는 ‘평화주의자’다. 모기가 다른 동물을 무는 순간 피가 섞여 다양한 질병을 옮기게 된다. 모기가 각종 감염병의 매개동물이 되는 것은 그래서다.

특히 치명적인 말라리아·뎅기열을 옮기는 말라리아모기·이집트숲 모기 등 30종의 모기가 골칫거리다. 이중 말라리아는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다. 국내에서 말라리아는 ‘학질’로 통한다. 해마다 500∼1000명의 환자가 발생한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국내 말라리아는 대체로 독성이 약한 편이어서 제대로 치료하면 완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열·오한·두통 같은 증상들이 동반돼 사람을 축 늘어지게 만든다. 지긋지긋하게 달라붙어서 떼어내기 힘든 고생을 흔히 ‘학질을 뗀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래서다.

권위 있는 과학전문지인 사이언스엔 모기가 오랫동안 모기 청정지역이던 고(高)지대까지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연구논문이 올해 실렸다. 이는 지구온난화 덕분에 모기가 자신들의 서식지를 확대시킨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로 요즘은 초겨울에도 모기에 물린다. 따뜻한 아파트의 계단을 따라 올라오는 모기 탓에 여름이 지나도 모기에 물리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모기는 귀신같이 사람을 찾는다. 20m 밖에 있는 사람의 냄새를 맡고 날아온다. 2013년 ?사이언스?에 따르면 모기가 사람을 찾아내는 세 가지 방법, 즉 이산화탄소·땀 냄새·체온 중에서 이산화탄소 감지 기능이 특히 중요하다. 이산화탄소 추적 유전자를 없앤 모기는 사람을 전혀 탐색하지 못한다는 것이 논문의 결론이다. 이로써 모기의 ‘아킬레스건’ 하나가 밝혀진 셈이다. 모기가 위험한 것은 단순히 피를 빨아서가 아니라 말라리아 원충이나 뎅기열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를 인체에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 니들은 모기침 보고 개발
암컷 모기만 흡혈(吸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암컷 중에서도 알을 낳은 모기가 자기 몸 안의 모기 알을 먹이기 위해 사람의 피를 빤다. 모기 입장에서 본다면 들키면 ‘맞아 죽을 것을 각오하고’ 침을 꽂는 지극한 모정의 발로이자 생존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들키지 않게 침을 꽂으려면 몇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침이 가늘어야 한다. 모기 침의 굵기는 머리카락의 1/4이다. 현재 가장 가는 주사바늘(32G)의 1/10에 불과하다. 따라서 모기 침이 피부를 뚫어도 사람은 거의 통증을 못 느낀다.

모기는 또 흡혈을 돕는 특수물질을 침과 함께 피부에 주입한다. 모기의 침엔 통증을 못 느끼게 하는 마취물질, 이 마취물질이 금방 퍼지게 하는 확산물질, 사람·동물의 피가 금방 굳지 않게 하는 혈액응고 방지물질, 혈관을 확장해 피가 잘 빨리도록 돕는 혈관확장 물질, 피와 함께 옮겨지는 말라리아 원충이 사람 면역세포의 공격을 받지 않게 하는 면역억제 물질 등이 들어 있다. 모기의 침이 이런 성분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운 데 이들은 모기 침 속에 든 20개 물질 중 기능이 알려진 반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피를 빨기 위한 ‘첨단무기’들을 시리즈로 갖고 있는 ‘흡혈 종결자’다.

인간은 이미 이런 모기의 ‘첨단무기들’을 모방하고 있다. ‘마이크로 니들(micro-needle)’은 모기 침을 모방한 수백 개의 주사 다발로, 여기에 피부노화 억제 약을 채워 얼굴을 두들기면 약 성분이 피부를 뚫고 쉽게 들어간다. 화장품처럼 피부에 바르는 것보다는 ‘마이크로 니들’이 유용한 물질을 피부에 침투시키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 또 혈액응고 방지물질은 심장마비의 주된 원인인 혈전(피떡)의 제거제로 이미 병원에서 쓰이고 있다. 모기가 가진 나머지 물질은 무슨 신비의 무기일까? 우리는 적을 너무 모르는 것이 아닐까?

생명 위협할 수 있는 군대 ‘모기 점호’
모기 대처법으로 우리는 현재 ‘창’(살충제)으로 죽이거나 ‘방패’(기피제)로 피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실내에선 살충제, 야외에선 몸에 바르는 모기 기피제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모기는 어떤 물질을 기피할까? 모기 기피물질을 선정하는 방법도 진화하고 있다. 일반적으론 후보물질을 털이 없는 누드(nude) 마우스(생쥐)에 바른 후 모기가 몇 마리나 달라붙는가를 측정해 고른다. 최근엔 모기의 이산화탄소 추적 능력을 차단하는 방법이 동원된다. 모기의 후각(嗅覺) 수용체에 이산화탄소보다 더 강하게 달라붙는 물질이 모기 기피제로 활용되는 것이다. 이 기피제를 피부에 바르면 모기 앞에서 옷을 벗고 서 있어도 모기는 사람이 있는 줄 모른다.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발명한 모기 기피제의 효능을 검사하기 위해 모기를 가득 모아놓은 상자에 맨 팔을 집어넣기도 한다. 이런 실험 장면은 보기만 해도 몸이 ‘근질근질’ 가려워지고 예전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군 훈련소에서 한 여름 밤에 벗은 채로 ‘얼음땡’이 되는 소위 ‘모기 회식’의 추억이다. 이 벌칙은 오래 전 군대에서 행해졌던 ‘얼차려’였다. 모기가 옮기는 병이 얼마나 많고 위험한 데 그런 무식한 행동을 했다니!

말라리아 모기, 태어나서 딱 한번 짝짓기
요즘 미국 플로리다 주의 주민들은 FDA(식품의약청)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모기퇴치용으로 개발한 유전자변형 모기를 살포하는 계획을 정부가 강행할 지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다수의 주민들은 정부의 계획에 반대한다. 유전자변형모기인 ‘GM 모기(GM, Genetically Modified)’의 원리는 간단하다. 모기로 모기를 잡겠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 방법이다. 말라리아를 옮기는 암모기는 태어나서 딱 한번 짝짓기를 한다. 이때 ‘내시’ 수컷 모기와 짝짓기를 하면 불임이 돼 새끼가 태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수컷의 불임화(不姙化)를 이용한 해충 방제법은 50년 전부터 현장에서 써 왔다. 다른 해충의 경우는 대개 감마선(방사선의 일종)을 쪼여서 ‘내시’ 수컷을 만들었지만 모기는 너무 작아서 방사선 방법 대신 불임 유전자를 가진 ‘내시 GM 모기’를 만들어서 살포하겠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씨를 말리는 방법이다. 예비 실험결과 말라리아 감염 모기가 85%나 줄었다. 현재 개발 중인 또 한 종류의 GM 모기는 말라리아 원충 자체를 죽이는 모기다. 2013년 저명한 학술지인 PNAS에 소개된 방법은 말라리아 원충을 죽이는 유전자를 삽입한 GM 세균을 모기 장내(腸內)에 넣는 것이다. GM 세균을 장내에 지닌 GM 모기는 말라리아 원충이 들어오면 죽여 버린다. 유전자가 변형된 GM 모기를 자연계에 살포하겠다는 미국 정부 방침에 환경단체들의 반발이 거세다. GM 모기를 풀어 놓으면 더 독한 변종(變種) 모기가 반드시 생길 것이며 또 이 방법으로 모기를 박멸하면 모기를 먹고 살던 박쥐가 굶어 죽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아직 야생에 GM 생물체를 풀어놓은 적이 없는 미국 정부의 결정이 주목된다.

열흘에 100마리의 알을 낳고, 여름엔 하루 만에 수십억 마리가 태어나는 모기를 박멸시키기란 쉽지 않다. 또 생태계의 한 축인 모기를 박멸시킬 경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최선의 방법은 천적을 이용하는 것이다. 모기 장내에 살면서 독소를 만들어 모기를 죽이는, 이른바 킬러 미생물을 대량 생산해 모기 번식지역에 살포하는 방법도 있다. 모기 킬러인 ‘모기 물고기(탭민노우, mosquito fish)’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겠다.

다가오는 여름 휴가철엔 모기를 조심하자. 모기를 유인하는 3가지 인자, 즉 이산화탄소·땀 냄새·체온 중에서 땀 냄새는 샤워로 없앨 수 있다. 야외 활동이나 캠핑을 계획한다면 모기 기피제나 긴 소매·긴 바지로 노출을 최소화 하자. 모기향은 코앞에 놓을 것이 아니라 실내 공기의 대류를 감안해 높은 곳에 놓고 방충망을 점검하자. 남부 아프리카·일부 동남아 등 말라리아·뎅기열 위험국가를 여행할 계획이라면 예방주사는 필수다. 해당지역 여행 후 나타나는 고열·구토 등 감염 증상에도 유의해야 한다.

모기는 수억 년을 살아남은 생존의 ‘고수’다. ‘모기와의 전쟁’에서 완벽한 ‘창’을 준비하는 동안 ‘방패’를 잘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모기에게 칼을 빼 든 인간, 과연 벨 수 있을까?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한국과학창의재단 STS사업단www.biocnc.com에서 바이오 콘텐트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김은기 인하대 교수 ekkim@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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