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관련자의 석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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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긴급조치관련자 86명이 제헌절을 맞아 석방된 것은 반갑고도 뜻있는 일이다.
우리는 정부의 이번 석방조치를 환영하면서 앞으로도 이런 조치가 폭넓게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조치는 비록 기대했던 것보다는 한정된 범위에 머무른 것이기는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더위의 짜증과 유가충격의 허탈에 묻힌 국민들에게 모처럼 흐뭇한 소식이 아닐 수 없으며, 우리 사회의 신뢰와 여유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원래 건강한 사회에서는 가혹한 것보다는 관용과 여유가 더 넓고 큰 자리를 차지하게 마련이며, 이런 기풍의 조성 역시 정부가 선도·수범할 필요가 있다.
국민에게 널리 관용을 권장하기에 앞서 정부 스스로 그런 자세를 보이는 것이 중요함은 재언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더우기 최근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련에 직면해 있는 우리나라에서 국민적 단합의 모태라 할 수 있는 관용의 기풍을 기르는 것은 뭣보다도 중요한 일이며, 이번 석방조치는 그런점에서 뜻있는 일보로 평가될 수 있다.
특히 이번 석방자의 대부분이 학생이라는 사실은 많은 국민들의 감회를 깊게 하는 일이며, 이들에게 새출발의 기회가 주어진데 대해 누구나가 기뻐할 것이다.
국제적으로도 이번 조치는 한국의 인상을 밝게 해줄 것이 틀림없다. 정부의 공식태도는『한국에는 범법자는 있어도 정치범은 없다』는 것이지만, 이번 조치에 대한 국제적 반향이 상당히 크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미국내의 일부인사나 일부 여론의 동향에서 보는 것처럼 일부 수감자들 때문에 한국이 겪어 왔던 불필요한 손해를 더이상 받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국내문제를 딴나라의 눈치를 보며 다뤄서는 안되고 또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세계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데 있어서는 각국이 모두 불가피하게 연관성을 가진다는 측면은 역시 소홀히 볼 수 없을 것 같다.
따라서 이번과 같은 석방조치가 역사적인 한미정상회담이후의 대미우호관계를 내실적으로 다지는데도 기여할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최근 국내외 정세를 보면 정부와 국민이 혼연일체로 대처해 나가야 할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3당국회의를 일단 거부한 북괴와의 어려운 줄다리기가 그렇고, 유가충격을 극복하는 노력에 있어서도 또한 그렇다.
이런 때일수록 내부적인 융화와 상호신뢰가 있어야 대외적으로 유연하게 능률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됨은 물론이다.
내부의 일에 매달리다 보면 대외적으로 경직성을 면할 수 없게 되고, 내부의 보조가 일치하지 않으면 대외적인 자세에도 허가 생기기 쉬운 법이다.
이번 석방조치는 이같은 내부의 융화를 높이고 대외적인 우리 자세를 탄력성있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될것으로 믿어 의심치 앉는다.
또 이번 조치가 곧 열릴 임시국회의 분위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근본적인 현상개혁을 요구하는 신민당과 방어적인 여당과의 첨예한 대결이 우려되는 터에 정부가 이같은 조치를 취한 것은 중요한 쟁점하나에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한번 석방조치를 환영하고 빠른 시일안에 남은 수감자들에 대해서도 같은 조치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우리는 석방된 인사들의 자중자애와 밝은 앞날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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