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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노선승리로 근대화에 청신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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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공의 전국인민대표대회 제5기 제2차회의는 지난 30년간의 혁명과 혼란의 무정부적 시대를 청산하고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경제등 현실문제에 최우선 과제를 두는 실용노선의 법치시대로 접어드는 길을 터 놓았다.
3개년 경제조정기를 설점하고 법제의 민주화를 이룩한 이번 대회는 왕동흥으로 대표되는 좌파와 등소평의 실권파간의 노선투쟁에서 실용주의 노선이 승리하여 중공이 4개근대화노선을 강력하게 추진할수있는 기반을 다져놓았다.
「홍콩」의 중공전문가들은 중공이 모택동사망과 4인조타도이후 급격하게 추진된 근대화 과정에서 두가지의 모순점이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첫째 수상 화국봉도 인정했듯이 지나치게 야심적인 근대화계휙을 무리하게 추진하여 산업간의 불균형을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전력ㆍ수송등 사회간접시설은 뒤떨어져 있는데 철강등 일부공업에 투자를 편중시켜 산업불균형을 더욱 조장했다.
예를들어 전력의 부족으로 전국30만개의 기업중 20%인6만여공장이 정상가동을 하지못하고 있는데도 이를 해소할 대책은 세우지않고 불요불급한 장기사업에 투자하는 모순이 드러났다.
9억5천만 인구의 80%이상이 종사하는 농업에 대한 투자는 78년 국가예산중 10ㆍ7%에 불과한데 중공업은 50ㆍ4%를 차지했으며 경공업에대한 투자는 5ㆍ4%에 지나지않아 생필품 부족현상을낳았다.
자본투자의 회임기간이 길고 실질효과가 더딘 중공업우선정책은 또 2천만명이상으로 추산되는 실업자 문제를 낳았다.
둘째 근대화의 조기달성을 위해 부수상 등소평이 주창한 해방노선과 물자자급정책은 극단적인 민주주의의 보강을 요구하면서 「데모」와「파업」을 일삼는 극우파를 등장시켰고 심지어는 모택동사상을 부정하는 사태까지 일으켜 민주화에 제동이 걸리는 계기가 됐다.
이같은 상황은 좌ㆍ우의 사상투쟁단계에서 벗어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안정ㆍ단결을 이룩하고 근대화를 밀고나간다는 중공당3중전회(78년12월)의 결의 이후 민주화추진과정에서 나타남으로써 중공으로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딜레머」로 보인다.
실권파가 이같은 불균형의심화와 극우파의 등장으로 그조정에 고민하고 있음은 그때까지 수세에 몰렸던 중공당부주석 왕동흥등 좌파에게 좋은 반격의 구실과 기회를 아울러 제공했다.
좌파는 극우파의 탄압을 요구하면서 계급투쟁 우선의 모노선을 견지한채 경제건설의 병행을 선언한 전인대제5기1차회의(78년2월)의 정신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지난6개월동안 중공당지도층내에서 불꽃튀는 논쟁을 전개한 북경이다.
이 노선투쟁과정에서 실권파는 좌파의 주장을 누르고 승리한 것이며 근대화의 모순점을 시정하는 경제조정기를 설정하고 극우파와 좌파의 등장을 봉쇄하고 법에의한 통치시대를 열 법제를 확립시켰다.
이번 경제조경에서 두드러진 현장은 중공이 계획경제체제에서 시장경제원리를 도입하여 혼합경제체제를 채택하고 외자도입의 길을 터서 세계경제와 호홉을 같이하는방향으로 과감하게 전환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공은 앞으로 책임경영제와 기업정리를 강력하게 추진할 것으로 보이며 일설에는 30만개 기업중 5만개의 기업이 이미 정리됐다고 한다.
특히 중공지도층이 법제의완비가 근대화의 추진에 불가결한 요소라고 보고 서방의 그것과 별로 슨색없는 필수적인 법제를 마련했다는것은 헌법에 명시된 선언적 규정을 실질적 규정으로 전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난 30년동안 33차례의 입법검토 끝에 처음으로 햇빛을 본 형법과 판례법의 제정은 중공이 명실상부하게 인민을 법에의해 다스리겠다는 의지의 반영으로 사법권의 독립에 중대한진전을 이루어냈다.
이와함께 채택된 전인대의권능격상과 현이하의 인민의회대표의 복수후보에 의한 직선제등은 중공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할 조치임은 물론 중공체제내에서 궁극적으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변신의 밑바닥에는 근대화에대한 중공의 염원이 강하게 깔려있는 것이 틀림없지만 또 지난 십수년간 1인전제에서 빚어진 비합법적인 숙청의 해독이 더이상 없어야되겠다는 박해받은 사람들의 의지도 담겨있음이 사실이다.
중공의 역사에서 혁명적이랄수있는 이러한 변혁을 주도한 사람이 다름아닌 부권파의 진운과 팽진이란 점은 그점을 잘 말해줄뿐만 아니라 중공의 권력이 등소평을 정점으로 하는 온건ㆍ실무파에의해 확고하게 장악되었음을 설명해준다.
이대회 폐막을 전후해서 왕동흥과 진석련에대해 공금유용과 권력남용 사실을 들어각각 그들을 비난한 대자보가 나타난 것이 즉각적인 그들의 탈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의 몰락이 서서히 다가오고있는 징조로 보아야할 것같다.
한편 수상 화가 정치보고에서 북한의 통일정책을 지지하면서도 한반도의 통일이 무력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고 처음으로 강조한 것은 중공이 북한의 무력남침정책을 견제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공은 이제 계급투쟁의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판단하는등의 노선을 재확인하고 민주화의 강화로 근대화에 매진하는 수성기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홍콩 이수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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