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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엔 영화 한 편 받는 데 12일, 내년엔 9.6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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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호 20면

1994년 6월 20일. 한국통신은 ‘www.’으로 시작하는 생소한 통신서비스인 ‘인터넷’을 처음 소개했다. 속도도 느렸지만 당시엔 이미 천리안(1985), 하이텔(92년), 나우누리(94년) 같은 PC통신이 본격적으로 가입자를 끌어모으던 때라 인터넷은 뒷전으로 밀렸다. 85년 첫 서비스를 시작한 천리안 이후 PC통신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97년 가입자가 310만 명이 넘었다. 한국통신의 인터넷 운영요원 10명은 서비스 확장은 물론 사용자 교육까지 도맡아야 했다.

상용화 20년 맞은 인터넷 혁명

그러나 98년 두루넷이 한국전력의 광케이블을 활용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들고 나오면서 전세는 180도 바뀌었다. 이듬해 하나로통신은 전화선을 이용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기술인 ADSL을 선보였다. 원래 제2 시내전화 사업자였던 하나로통신은 유선전화 가입자가 포화에 이르자 초고속 인터넷에 사활을 걸었다. 이에 자극받은 한국통신도 같은 해 ‘메가패스’라는 이름의 ADSL 서비스를 시작했다.

경쟁이 시작되자 인터넷 시계는 핑핑 돌아갔다. 예컨대 1.2GB(기가바이트) 용량의 영화 한 편을 내려받는 데 드는 시간이 상용화 첫해인 94년에는 12일 3시간이나 걸렸다. 그런데 2000년에는 1분 38초면 가능해졌다. 기가 인터넷이 보급되는 내년엔 9.6초로 단축된다. 무료 e메일 서비스의 등장은 유료서비스를 고집한 PC통신에 마지막 결정타였다. 97년 5월 다음커뮤니케이션이 국내 처음 제공했다. 이후 검색 및 포털사이트가 잇따라 문을 열면서 인터넷 시대가 열렸다. 우리나라는 2001년 OECD 국가 중 초고속망 구축 수준 1위에 올라섰다. 2002년에는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 2009년에는 ICT 발전지수 세계 2위 등의 기록을 세웠다. KT 김철기 상무는 “지금도 주요 국가 중 인터넷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은 대한민국”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상용화 13년 만인 2012년 8월 KT는 업계 최초로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800만 명을 돌파하며 시장 1위를 기록했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 전체 인터넷 가입자(약 1800만 명)의 44%에 달하는 수치다. 지난해 말 현재 우리 국민의 인터넷 이용률은 82.1%에 달한다.

인터넷 혁명 인간 삶의 양상까지 바꿔
인터넷 상용화는 한국인의 삶을 전반적으로 변화시켰다. 일례로 인터넷 뱅킹 가입자는 9500만 명(2013년 말 기준)에 달한다.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에는 하루 52억 건의 대화가 오간다.

새로운 인터넷 기업도 대거 등장했다. 시가총액 26조원대의 네이버는 물론 게임업체인 넥슨과 전자상거래 업체인 G마켓 등 수십 개의 기업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태어났다.

문화 소비 패턴까지 바꿔놓았다. KT에 따르면 스마트폰 이용자의 95%가 모바일 기기를 통해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제 어디서나 연결이 가능한 인터넷을 통해 ‘다음카페’나 ‘싸이월드’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일찌감치 꽃을 피웠다. ‘전자 민주주의 시대’가 열린 덕에 대선과 총선의 선거문화도 극적으로 바뀌었다. 유태열 KT경제경영연구소장은 “지난 20년의 변화보다 앞으로의 20년은 더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일상생활이 인터넷과 접목돼 새로운 융합 산업이 만들어지는 ‘스마트 신경제’가 본격화돼 2009년 43조원에 불과했던 IT융합산업의 규모가 내년엔 76조원을 넘기게 된다”고 소개했다.

유 소장은 “인터넷은 ‘체스판의 후반부’로 빠르게 이동 중”이라고 진단했다. 변화를 앞두고 있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게 유선에서 모바일 인터넷으로의 전환이다. 유선에서 시작된 인터넷은 무선과의 융합을 거쳐 사람과 사물 간 구분 없는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돼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전달·분석해 주변 환경과 상황에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으로 진화 중이다.

기업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KT는 앞으로 20년을 ‘기가(GIGA) 시대’로 명명하고 인간과 사물이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 혁명을 이끌겠다는 각오다. 이를 위해 우선 올해 하반기부터 기존보다 10배 빠른 기가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한다. 또 광대역 롱텀에볼루션(LTE)에 기가 와이파이를 결합한 이종망 융합기술, 기존의 구리선으로 3배 이상 빠른 속도를 내는 전송기술 등도 내놓을 예정이다. SK텔레콤도 이달 중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광대역 롱텀에볼루션 어드밴스트(LTE-A) 상용화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광대역 LTE-A의 통신 속도는 일반 LTE(최대 속도 75Mbps)보다 최대 3배 빠른 225Mbps에 달한다. 그만큼 다양한 고품질 인터넷 콘텐트를 더욱 안정적이고 빠르게 무선 기반으로 이용할 수 있다.

미래 세상에서 인터넷을 주도하는 기업은 어디가 될까. 이와 관련해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최계영 선임연구원은 ‘인터넷 미래상’ 보고서를 내고 미래 인터넷의 주도자는 고도의 알고리즘을 갖춘 플랫폼 기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 연구원은 이 보고서에서 “인터넷 전체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플랫폼 사업자가 미래 세상을 주도할 수밖에 없는데, 이들 사업자의 핵심 경쟁력이 바로 고도의 알고리즘”이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이 사용자가 알 만한 사람까지 찾아서 보여주는 알고리즘을 무기로 폭발적으로 회원 수를 늘려온 것처럼 대량의 데이터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는 기업이 미래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시장은 구글이나 애플 같은 미국 기업들이 주도하는 상황이다.

사이버 범죄 등 부작용도
최근 정보 보안업체인 맥아피는 국제전략연구소(CSIS)와 공동으로 “사이버 범죄에 따른 경제 손실액이 한 해 최대 5750억 달러(약 583조원)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터넷 기반 경제 규모는 연간 2조~3조 달러로 추정되는데, 이 중 15~20%가 사이버범죄에 따른 피해 비용으로 추정됐다. 사물인터넷이 활성화될수록 보안위협은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사물인터넷의 확산과 관련된 보안위협이 국내에서만 13조4000억원(2015년 기준)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2030년에는 피해 금액이 26조7000억원에 이른다.

인터넷과 모바일에 기반한 새로운 서비스와 기업이 속속 등장하면서 산업 간 경쟁도 더 치열해지고 있다. 금융권이 대표적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인 페이스북은 온라인 쇼핑 등에 이용될 자체 결제수단을 선보이기로 했다. 구글도 전자지갑과 온라인 결제 서비스 확대 방침을 내놓았다. 국내에서는 ‘카카오톡’을 활용한 금융거래 서비스인 ‘뱅크 월렛 카카오’가 이르면 올 하반기에 상용화될 전망이다.

인터넷 발전이 저임금 근로자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최근 런던을 비롯한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택시 파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택시업체들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인 ‘우버(Uber)’가 택시 면허가 없는 자가 운전자도 택시 영업을 하게 한다”고 반발했다. 이 앱은 사용자 인근에 있는 자가용이나 렌터카를 불러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와 관련해 영국 가디언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목격하게 될 수많은 갈등 사례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최계영 연구원도 “인터넷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지식기반 관련 직업은 증가하는 반면 비숙련 근로자의 기회는 감소해 장기적으로 소득격차가 국가적 과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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