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어린이책' ⑥ 짜장 짬뽕 탕수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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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짜장 짬뽕 탕수육
김영주 글
고경숙 그림, 재미마주
43쪽, 7000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고여덟 살부터 스무 살 직전까지 학교에 다니는 건 모두 당연히 여긴다. 그러나 좁은 교실에 아이들을 스무 명 넘게(한때는 육칠십 명이었다) 밀어 넣고 하루 종일 지내게 하는 것은 분명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다.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만 해도 한 마리당 주어지는 공간은 그보다 훨씬 넓을 것이다. 이러니 학교에서 왕따 문제가 끊임없이 벌어지는 것은 ‘요즘 애들’이 특별히 못 되어먹어서, 사회가 흉흉해서 그런 게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동물적 반응일 수 있다.

 근대 초기 학교 풍경을 볼 수 있는 이탈리아 동화 『쿠오레』만 봐도 부잣집 아이, 힘센 아이가 가난하고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모습은 흔했다. 다만 그때는 아이와 학부모가 교사의 권위를 존중했고, 믿음직하고 어른스러운 친구가 앞장서 교실의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곤 했다. 그러나 ‘그때’ 그 교실 풍경은 이제 정말 되돌릴 수 없는 과거가 됐다. 교실 붕괴라는 말이 낯설지 않고, 특히 왕따 문제 같은 것은 교사, 학부모, 교육청, 국가도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난제가 된지 오래다.

 모든 것에 시작과 끝이 있듯 학교라는 곳이 영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 아이들은 학교에 다닐 테고 그 시간은 그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다. 교사에게도, 학부모에게도, 어떤 제도와 법에도 기댈 수 없다면 남는 것은 오로지 아이들뿐이다. 아이들은 문제를 일으키지만 해법 또한 그들이 쥐고 있는 것이다.

 교실이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어 가고 있다는 한숨 소리가 높지만 동물의 왕국인 정글이 무법천지인 것만은 아니다. 『짜장 짬뽕 탕수육』은 부당한 놀이로 약한 아이를 놀리던 남자 아이들이 우여곡절 끝에 자기들만의 새로운 질서와 평화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쉬는 시간에 목소리 큰 아이가 화장실에서 왕 변기, 거지 변기를 정해놓자 다른 아이들은 오줌이 마려워도 거지 변기에서 용변을 보지 못한다. 그걸 썼다가는 거지라고 놀림을 받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고 서로 상처만 입히는 놀이지만 아이들은 완전히 몰두한다. 누군가 거지가 되면 신나게 놀려먹지만 혹시 자기가 피해자가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니 가만 놔두면 심각한 왕따 놀이로 발전하기 직전이다.

 이 난제를 푼 것은 용기 있고 지혜로운 중국집 아들이다. 그는 왕 변기, 거지 변기를 짜장, 짬뽕, 탕수육 변기로 호명해버린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더 재미있는 놀이로 옮아가고 왕, 거지 놀이는 자연스레 폐기된다. 왕, 거지는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희생자로 만들었지만 짜장, 짬뽕, 탕수육은 모두 다 맛있고 그러기에 평등하다. 이렇게 교실이라는 정글은 그들 방식의 평화를 되찾는다. 동물답게 시작한 영역 다툼을 놀이하는 인간으로서 해결한 것이다. 이 아이들이 자라나서 나아갈 세상도 이렇게 작은 지혜로 평화와 평등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짜장 짬뽕 탕수육』은 99년에 나왔기 때문에 도시락 반찬 때문에 놀림 당하는 에피소드도 있어 살짝 격세지감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교실 풍경이 바뀌어도 적어도 학교라는 제도가 없어지지 않는 한 이 아이들의 본성만큼은 시대를 초월하는 호소력이 있다. 더욱이 짜장, 짬뽕, 탕수육이 영원히 아이들의 베스트 메뉴인 이상 이 사실은 틀림없다.

박숙경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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