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 지하철…거리엔 간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발트하임」「유엔」사무총장을 수행, 평양방문을 마치고 4일하오 서울에 온 서방기자들은 『큰 건물과 웅장한 동상도 보았고 요란하게 꾸며놓은 지하철도 보았으나 가장 중요한 인간을 보지못했다』며 「평양29시간」의경험을 「조지·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전율의 도시에 비유했다.
이들이 지난2일낮 평양공항에 도착하자 남녀를 1대1로 혼성한 수백명이 5열로 질서정연하게 서있었으며 왼쪽가슴엔 김일성「배지」, 오른쪽가슴엔「플래스틱」조화를달고 「만세」삼창으로 「기계처럼」환영했다며 한기자는 그때의느낌을 이렇게 전했다.

<『환영이얼마나 집단적·기계적인지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나뿐아니라 「발트하임」총장 수행기자들의 「평양29시간」 총장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하노이」에서 냉대를 받았으며 평양에서의 환영이 처음으로 받은 「융숭한」대접이었다. 「발트하임」총장 수행기자들의 「평양29시간」도 전에 「아프리카」에 갔을 때 이런식의 환영을 받았노라고 말했다.』
일행이 공항을 떠나자 확성기에서 군대구령같은 소리가 흘러나왔고 동시에 환영행렬은 군인같은 절도있는 발걸음으로 기계처럼 움직였다.
거리에는 군데군데 교통순경이 서있었지만 상상도 못할만큼 자동차도 사람도 찾아볼수없었다. 「뉴욕·타임스」의「맬컴·브라운」기자는 『자동차도 없는데 교통순경이 왜 서있는지 모르겠더라』고했다.
북한안내원들을졸라 지하철을 탔는데 역마다 김일성의 대형 동상과 벽화가 장식돼 있었다. 『사실 거리마다 김일성으로 가득찬 기이한 풍경이었다. 이곳은 「국민」의 나라가아니라「빅·브라더」(대형)의 나라같았다』고 한기자는 꼬집었다.
김일성의 궁전은 호화찬란한 「샹들리에」 5개가 걸려있는 천장높이가6.6m나 됐으며 온통 화려한「이탈리아」대리석으로 지어졌고 독일풍의 화려한 가구로 가득찼다. 「팔레비」전 「이란」왕의 「야하람」관을 방문한 일이 있는 한 기자는 『「샤」가 보았다해도 이집주인 이야말로 미친사람이라고 혀를 찼을것』이라고 했다.
김일성과의 만찬때 김은 「축배」를 들자며 식탁을 돌았으나 기자들이 자리한 마지막 「테이블」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67세의 김은 나이에비해 건강해 보였지만 목뒤의 혹이 듣던것보다 유난히 크게 보였다.
서독ZDF방송의 「노르베르트·할링하우젠」기자는 평양에서 연극을 봤다며 『소녀고아가 「수령」의 은덕으로 잘자라 여기자가 된다는 내용인데 북경이나 「모스크바」정도라도 그런걸 연극이라고 공연하면 웃음거리가 됐을것』이라고했다.
「할링하우젠」 기자는 「발트하임」이 평양방문에만족해하는 것은 「하노이」·북경에서 냉대받고 평양에서 매우 『융숭한 환영을 받았기 때문』인것같다고 했고, 미ABC방송의 「루·쇼피」 기자는 『양쪽 입장이 분명한데 「발트하임」이 새로운 안을 들고나올 여지가없이 절차상의 문제에 국한될것 같다』고 진단했다.
평양까지 「발트하임」을 수행했던 기자는 서울에 오지않고 동경에 처졌는데『평양측이 「유고」당국에 불평한 것같다』고 한기자가 전했다.
아무튼 이들에게 평양은 「박물관 같은 도시」「죽음을 느끼게하는 정적의 도시」였으며 『지구상얘기 같지않은 「기막힌 경험」』 이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