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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의 제한 공개 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서울시민은 어디서 휴식을 취하라는 말인가. 12일 비원을 제한공개한데 이어 문공부는 나머지 4대 궁에 대해서도 앞으로 입장객을 제한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대의 도시 생활에는 시민의 휴식처, 시민의 광장이 절대 불가결한 시설인데 7백8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수도서울에 이렇다할 공원도 광장도 없다면 너무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도시의 시민 1인당 필요한 선지공원면적은 최소한 10평방m인데 서울의 시설공원은 불과 4·5 평방m라 한다. 1인당 20평방m가 넘는「뉴욕」이나 「런던」에 비한다면 우리는 너무도 메마르고 살벌한 환경에 살고 있다는 실증이 된다. 그런 터에 그나마 기존하는 고궁마저 드나들기 어렵다고 할 때 서울시민은 과연 어디로 발걸음을 돌려야 할까. 고궁마저 지극히 제한된 관람객에 한하여 입장을 허용한다고 할 때 도심지역의 다른 어디서 공원의 구실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비원에 대한 입장객 제한 조처는 그런 대로 수긍할만한 이유가 있다.
비원은 이미 공원의 성격을 상실하고, 특수 유적으로서, 보호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비원의 공개는 이번이 3번째다.
61년에 처음 개방한 이래 국영의 영보관 또는「호텔」화 안이 대두되면서 70년에 잠시 폐쇄하고 순환도로 신설공사를 벌였었다. 다시 6년간 개방하자 경내가 온통 풀 한 포기 없는 운동장처럼 짓밟혀 76년 여름 또 문을 닫아 버렸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공개를 하더라도 출입제한이 불가피 하다는 것이 문화재관리국의 실명이다.
비원의 제한 공개 안은 벌써부터 제기되었던 것이나 워낙 공원시설이 부족한 대도시 서울이어서 시민의 여론은 번번이 그 개방을 찬성하는 쪽에 집중되곤 했었다. 서울 시내의 4대 궁 가운데 나무 그늘을 찾아 유연하게 쉴 곳은 한군데도 없기 때문에 비원만이 유일하게 숨이 울창한 공원구실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심의 남산조차 주위를 모두 가시울타리로 막아 놓은 지 오래돼 이제는 공원이 아니라 녹지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국의 옛 조원양식을 간직한 유일한 비원을 개방할 수도, 폐쇄할 수도 없게 된 불행 요인은 물론 시민의 공덕심 결여에도 있지만 그보다는 서울의 무절제한 도시계획 속에서 싹튼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번 4대 고궁 제한공개 검토 소식을 들으면서 지난 18년간의 비원공개 경위를 돌이켜 보지 않을 수 없다.
비원 개방 후 첫 폐쇄조치는 관람객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한 시설개수공사 때문이었다. 이때 뒷동산다운 아늑한 오솔길을 모두 없애고 6m폭의 순환도로를 신설했고, 큰 수목 밑의 잔 나무들을 말끔히 제거해 속이 훤히 보이도록 하는 한편 곳곳에 매점을 두어 놀이판을 만들었다.
그 결과는 비원의 본래 지형을 파괴하고 이조 5백년간 전국에서 옮겨다 심은 근3백 종의 수목 일부를 아깝게 뽑아 없앴을 뿐더러 끝내는 운동장처럼 황폐화 한 것이다. 그를 보충하기 위해 최근엔 다시 30종 7만여 그루의 나무를 식수했다고 한다.
서구에서는 고궁과 기타 명소를 공원화 하다시피 공개함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교엔」(어원)을 비롯한 허다한 옛 유적이 엄숙한 역사공원 내지 시적인 도시공간으로 개방돼 있음을 보게 된다.
시급한 것은 곳곳에 공원을 설치하는 일이거니와 앞으로 남서울 대공원이 신설된다 하나 그것으로 충족되는 것도 아니다.
서울의 고궁은 지금 동물원 화 한 창경원을 제외하고 비교적 조용한 산책「코스」가 되고 있다. 고궁의 복원이니 정화니 하여 공사를 벌이다가 자칫 비원의 선례처럼 기존 풍치마저 파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까 우려되는바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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