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의악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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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무슨「업보」란 말인가.
티끌만큼도 나쁜 짓을 한일이없고, 사악한 마음이라곤 꿈에도 품어 본적이 없는 사람에게 엄청난 재난이 닥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때 우리는 흔히「업보」라는 말을 생각하게된다. 「업보」라고 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좋은 일을하면 내세에서 좋은 과보가 있으니까 현세에 선업을 많이 쌓자는게「업」의 사상이다.
그런가하면 우리의 운명이 이미 전세에 저지른 일로 인해 결정되어 있으니까 아무리 현세에서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숙명론도 「업」의 사상에서 나온다.
10세의 어린 효주양이 지난해 9월에 당했던 유괴의 악몽이 채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유괴되었다.
몇해전에 미국의 부호딸 「허스트」양이 유괴된 끝에 초과격파에 끌려다니면서 은행강도사건에도 한몫 끼었다가 잡힌 일이 있었다.
재판정에서 검사가 도망갈 수도 있었지 앉았느냐고 묻자「허스트」양은 유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당신은 모른다고 울며 항변했다.
그때 「허스트」양은 24세였다. 그런 유괴생활을 10세밖에 안되는 어린 효주양이 33일 동안이나 견뎌냈었다.
그랬던 효주양이 또다시 유괴된 것이다. 『무슨 전세에 업보가 있다기에』하는 취식이 저절로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번에는 효주양은 자신이 유괴당한지도 모르고 오히려 범인을 아저씨라 부르며 따랐다. 그래서 유괴의 공포도 절실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때는 범인도 곱게 다뤘다.
그런데 이번 범인은 전혀 다른것같다. 범인은 효주양을 「포니」승용차의 작은「트렁크」속에 발길로 차넣었다고 하지않는가. 그처럼 흉악한 범인이 어린 효주양을 어떻게 다룰것인지, 그리고 효주양은 신심양면에 걸쳐서 또 얼마나 큰 타격을 받을 것인지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사람은 원한이 뼈에 사무칠 때 이성을 잃을 수가 있다.
가난이 극에 달할 때 자칫 양심을 잃는 수도 있다.
아직은 범인의 정체를 알길이 없지만 효주양의 급우들이 말하는 인상착의로 봐서는 상습적인 범죄자인것만 같다.
어떠한 흉악범에도 한가닥 연민의 정은 있는 법이다.
그것에 우리는 메어달릴 수 밖에 없다.
업에는 원래 두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사회전체가 받는「공업」이요, 또하나는 개인이 받은「불공업」이다.
효주양이 받은 육체적인 고통을 우리가 대신 받을 수는없다.
그러나 그녀의가족이 받는 고통은 우리 사회전체가 받는 업이나 마찬가지다.
학교문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버젓이 길거리 유괴가 가능하게 만든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그렇다면 효주양네의「업보」는 우리 모두의 업보나 다름없으며 그 가족의 고통과 슬픔은 우리 모두의 것이어야한다.
하루빨리 효주양이 어머니품에 돌아갈수 있도록 전수사기관이 분발하기를 촉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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