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마취제 없어 진통제로 환자 수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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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닷새째 미군에 포위돼 있는 바그다드의 의약품 부족이 한계 상황에 도달했다고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9일 바그다드발로 보도했다.

신문은 "바그다드 알킨디 병원 의료진은 미군의 폭격으로 다친 환자를 수술하면서 마취제 대신 마취 성분이 든 진통제를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워낙 수술 환자가 몰리다 보니 마취제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 계속되는 폭격과 교전으로 민간인 부상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의약품 공급은 중단된 상태다.

바그다드 시내 12개 주요 병원들은 몰려드는 환자들로 며칠 전부터 포화 상태에 이르렀지만 의약품 공급은 물론 상수도와 전기 공급까지 끊겨 적절한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다. 알킨디 병원의 한 간호사는 "어제 교전이 벌어진 후 단 한시간 만에 10여명의 부상자가 병원으로 실려왔다"며 "이들을 수용할 더 이상의 병실도, 약품도 없다"고 말했다.

메디컬 시티 종합병원의 경우 비상용 발전기를 동원해 총 27개의 수술실 가운데 6개를 사용하고 있으나 지난 나흘간 쉬지 않고 가동하는 바람에 발전기 작동이 곧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고 신문은 전했다.

밤낮없이 환자들을 돌보아온 의료진의 체력도 한계에 이르렀다. 바그다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한 관계자는 "개전 이후 병원들은 최소한의 인원으로 환자들을 감당하고 있다"며 "의료진은 사흘간 한숨도 자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롤랜드 후겐 벤저민 ICRC 대변인은 "시가전이 계속 확대된다면 바그다드 의료시설들은 머지않아 완전 마비 상태에 이를 것"이라며 "세계 각국에 식량과 의약품 조달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유엔 측은 7억2천만달러 상당의 인도적 구호물자를 이라크로 운송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식수와 식량, 의약품 조달 등 비상구호를 위해서는 22억달러가 더 필요한 실정"이라며 국제사회에 긴급 협조를 요청했다.

한편 미군과 이라크군의 치열한 도심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는 바그다드 시내는 "죽음의 그늘이 짙게 드리운 유령의 도시로 변했다"고 AFP통신이 9일 현지발로 보도했다.

통신은 "8일 오후(현지시간) 바그다드 중심가는 무장군인들조차 눈에 띄지 않았으며 정적만 감돌고 있다"고 전했다. 야간이면 전력 공급 중단으로 도시 전체가 칠흑같은 어둠에 뒤덮이면서 으슥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신은진 기자,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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