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독한 법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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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신임 대법원장의 취임소감은 사뭇 인상적이다. 법관을 『고독한 성직자』에 비유하는가하면 『모든 국민이 승복하는 재판』이라는 말도 하고 있다. 너무도 망연한 말이 새삼 여운을 갖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미국의 최고법원인 대심원은 옛날엔 국회의사당에서 재판을 했었다. 건물이 없어서 그런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국민이 숭복할 수 있는 재판을 한다』는 그 상징적인 뜻을 존중한 때문이다. 지금도 백대리석의 우아하고 장중한 대심원건물은 의사당 옆에 있다.
대법원의 판결은 물론 다수결로 한다. 그러나 전원일지의 경우는 드물고 반대의견도 있다.
한가지 흥미있는 것은 그것을 빠짐없이 미합중국관보(유나이티드·스테이트·리포트=USR)에 게재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 USR에 실리는 대법원의 의견은 네가지로 나뉘어 있다.
다수파의견·반대파의견·다수파의 보충의견·소수파의 보충의견.
이것은 한마디로 l명의 원장과 8명의 판사로 구성되어 있는 대심원이『양심과 소신』에 의해 재판한다는 전통을 공고히 한, 하나의 역사적 기록이기도 하다.
비록 오늘의 사람들에 의해 어떤 판사의 의견이 비판을 받는다 해도 그는 역사의 공정하고 근엄한 『최후심판』을 위해 신념을 갖고 자신의 증언을 남겨놓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에는 정말 『성직자다운』자기반성과 극기와 사명감이 필요할 것이다.
영국의 궁중서열을 보면 왕족을 제외하고 「캔터버리」 대주교바로 다음이 대법관(로드· 챈셀러)이다. 「요크」대주교나 수상, 「아일랜드 대법관, 추밀원의장, 하원의장은 그 아래의 순에 있다. 대법관은 성직자의 예우를 받고있는 셈이다.
그러나 영국의 법원은 그 제도자체만을 보면 「사법권의 독립」을 의심받기 쉽다.
우선 대법관은 국왕의 대관으로 옥새를 갖고 있으며 법무상으로서 내각의 일원이다. 따라서 진퇴도 내각과 함께 한다.
하지만 오늘 영국의 법원을 경멸하는 사람은 없다. 제도상의 독립보다는 「양심의 독립」을 더 존중하기 때문이다. 「마그 나-카르타」와 같은 양심의 복통이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신임대법원장에 거는 국민의 기대도 여기에 있다. 사법권의 독립이 제도나 형식에서보다는 양심에서 더 중요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고독한 성직자의 길』임에 틀림없다. 국민의 신뢰와 존경과 승복을 받는 재판은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존경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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