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보다 가깝고 연인은 아닌 … '썸 타는' 남녀 듀엣 전성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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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밤의 꿀’을 부르고 있는 그룹 애프터스쿨의 레이나(왼쪽)와 래퍼 산이.

올 상반기 가요계 흥행 공식은 남녀 혼성 듀엣으로 귀결된다. 23일 음원사이트 멜론의 실시간 차트를 보면 10위 안에 산이와 레이나의 ‘한여름밤의 꿀’(2위), 정인과 개리의 ‘사람냄새’(4위), 신용재와 이해리의 ‘니가 빈 자리’(8위)까지 세 팀이 올라 있다. 30위로 범위를 넓히면 상반기 최고 히트곡인 소유와 정기고의 ‘썸’(24위), 악동뮤지션의 ‘200%’(25위), KBS ‘불후의 명곡-이치현 편’에서 호흡을 맞췄던 손승연과 더원의 신곡 ‘바라만 보네요’(27위)까지 6팀이 혼성 듀엣이다.

 듀엣은 최근의 주된 협업 방식인 피처링(featuring)에서 한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피처링이 다른 가수의 노래나 연주를 양념처럼 돕는 개념이라면, 듀엣은 기획 단계부터 실연까지 동등한 위치에서 작업한다. 정인과 개리의 ‘사람냄새’의 경우, 작곡가 이단옆차기 곡을 받아 두 사람이 함께 전체적인 컨셉트를 잡고 가사를 썼다.

 듀엣 열풍의 기폭제는 소유와 정기고의 프로젝트 싱글앨범 ‘썸’이었다. 이 노래는 멜론 차트 7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상반기 돌풍을 일으켰다. 친구보단 가깝지만 연인은 아닌 애매한 관계를 일컫는 신조어 ‘썸을 탄다’를 가사로 풀어내며 젊은 세대의 연애 세태를 정확히 짚었다. ‘썸’을 기획한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서현주 이사는 “노래를 구상할 당시 피처링 포맷의 곡들이 너무 많았다. 색다른 느낌을 주면서 ‘썸타는 남녀’란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듀엣을 기획했다”며 “최근 사랑 노래 가사들이 현실감 있게 나오다 보니 혼성 듀엣이 그 느낌을 전달하는데 더 용이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산이와 레이나의 ‘한여름밤의 꿀’도 과거에 호감이 있던 남녀가 한여름밤에 맥주를 마시면서 ‘썸을 타는’ 내용이다.

 산업적인 측면에선 신인을 알리는 마케팅 전략 중 하나다. 스타가 신인을 지원사격 해주면서 인지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최근 아이유가 신인 남성그룹 하이포와 부른 노래 ‘봄 사랑 벚꽃 말고’는 아이유의 인지도가 발판이 되어 성공한 사례다.

 물론 가장 큰 강점은 음역대가 다른 이성 간의 하모니다. 신용재와 이해리, 손승연과 더 원은 가창력이 출중한 보컬리스트의 만남으로 화제가 됐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씨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혼성 그룹이 가요계의 한 영역을 차지했으나 2000년대 중반 이후 아이돌 동성 그룹이 르네상스를 맞이하며 사실상 사라졌다. 현재 혼성 듀엣의 인기는 남녀의 하모니를 갈망하는 수요가 있었다는 반증”이라고 분석했다.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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