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덩어리로 나눠 팔겠소 … 우리은행 주인 어디 없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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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박상용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장이 23일 우리은행 매각 방식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은행을 팔기 위한 네 번째 시도가 본격화됐다. 정부는 ‘투 트랙(two track) 매각’ 방식을 앞세워 기필코 매각을 이뤄낸다는 각오지만 시장에서는 성공 여부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우리은행은 외환위기 이후 동반 부실화한 옛 상업·한일·평화은행이 합쳐져서 2002년 설립됐다. 예금보험공사는 당시 우리은행을 핵심으로 하는 우리금융지주에 12조80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지분 100%를 확보했다. 이후 12년 동안 공적자금이 투입된 다른 은행들은 모두 새 주인을 찾았지만 우리은행은 여전히 정부 소유로 남아 있다. 물론 정부의 의중은 아니다. 정부는 지분이 56.97%로 줄어든 2010년부터 세 차례 우리은행 매각에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23일 발표된 매각 방식의 핵심은 ‘투 트랙’ 또는 ‘더블 트랙’으로 불리는 분리 매각이다. 정부는 보유 지분을 각각 30%와 26.97%의 두 덩어리로 나눠 팔기로 했다. 30%는 경영권 인수 희망자에게 통째로, 26.97%는 여러 투자자들에게 나눠 팔겠다는 것이다. 매각 대상 물건의 덩치를 줄여 경영권 인수 희망자들의 부담을 낮추겠다는 의도와 지분을 조금씩이라도 줄이겠다는 의도가 동시에 반영됐다. 정부는 지난해 6월에도 우리금융지주를 우리은행계열·지방은행계열·증권계열로 쪼개 팔기로 결정하면서 매물의 덩치를 줄였다.

 26.97%는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자자 등에게 희망수량 경쟁입찰 방식으로 매각된다. 입찰 참여자가 인수 희망가격과 물량을 제시하면 정부가 높은 가격을 제시한 곳부터 순차적으로 물량을 배정한다. 참여자는 최소 0.5% 이상, 최대 10%까지 지분을 매입할 수 있다. 정부는 투자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향후 매입 물량 1주당 0.5주를 미리 정해진 가격에 추가 매입할 수 있는 권한(콜옵션)을 부여하기로 했다.

 핵심은 경영권을 좌우할 지분 30%의 매각이다. 첫 번째 변수는 한꺼번에 매입할 수 있는 인수 희망자가 있느냐는 점이다. 지분 30%를 사려면 2조5000억~3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공개적으로 경영권 인수 희망 의사를 밝힌 교보생명의 경우 자체 조달 가능 자금이 1조3000억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높은 투자수익을 보장해서라도 전략적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컨소시엄을 구성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지난 3월 한 토론회에서 “교보생명이 우리은행을 인수할 경우 (승자가 과도한 비용 때문에 위험에 빠지는) ‘승자의 저주’가 발생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교보생명이 자금 조달에 성공해도 문제는 있다. 현행 국가계약법상 일반경쟁입찰은 2곳 이상의 복수 입찰자가 존재할 경우, 즉 유효경쟁이 이뤄질 때만 성사된다. 교보생명 외에 다른 입찰 참여자가 나오지 않으면 매각은 무산된다. 지난 세 번의 매각 시도 역시 유효경쟁이 이뤄지지 않아 무산됐다. 이 때문에 이번 매각을 앞두고 금융계와 학계에서는 “경영권 지분 매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전량을 희망수량 경쟁입찰 등 방식으로 쪼개 팔아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박상용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은 “30%의 경영권 지분 매각이 이번에도 무산될 경우 그때 시장 상황에 따라 통째 매각 재추진 또는 희망수량 경쟁입찰 방식 도입 등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9월까지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을 합병해 새로운 법인을 만든 뒤 매각 공고를 하기로 했다. 경영권 지분 매각은 11월 예비입찰을 거쳐 내년 1~2월께 본입찰 및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을 마무리할 계획이고 소수지분 입찰 작업은 연내 마무리가 목표다. 한편 정부는 합병 후 새 법인을 우리금융이 아닌 우리은행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박 위원장은 “우리금융과 우리은행 모두 은행의 역사성 유지 등을 위해 새 존속법인을 우리은행으로 해 달라고 요청해와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내 1호 금융지주였던 우리금융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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