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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뱁새걸음」의 남북대화|서독「디·벨트」지 극동특파원「트로베」기자 특별기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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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한 접촉이 거론될 때마다 같은 분단국이라는데서 흔히 독일문제의 해결방식이 비교되곤 한다. 다음은 최근 판문점의 남북한 접촉을 취재한 서독「디·벨트」지의 극동특파원「프레트·데·라·트로베」기자가 독일의 경우와 비교하여 남북한 접촉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본지에 특별 기고한 내용이다. 【편집자주】
지난 17일 남북한 대표들이 만난 판문점의 회담 분위기는 놀라울만큼 우호적이고 차분했다. 이런 분위기를 두고 너무 많은 기대를 거는 것은 물론 잘못이다. 그렇지만 길게 보아서 직통전화의 재개라든가 제한된 범위의 가족방문, 어느정도의 경제교류 같은 자그마한 결실들은 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보기로는 북한이 대화에 나서게된 동기를 우선 평양에 대한 중공의 영향력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중공-일본-영국의 반소 방어선을 형성하려는 중공의 노력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필요로 할 수 밖에 없다. 주한미군 철수를 잠정적으로 중지하겠다는 미국의 발표가 북한을 대화에 나서게 한 이유중의 하나라는 것도 분명하다.
극단적인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김일성으로선 한국과 접촉하더라도 최소한의 범위를 넘어서기는 어러울 것이다. 북한을 엄격한 교조주의 체제 아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부에 대해 폐쇄적일 수밖에 없고 한국과의 접촉도 극소화할 수 밖에 없다.
동서독과 같은 광범위한 접촉이 이루어진다면 북한체제는 대폭적인 재편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도 서쪽은 민주주의, 동쪽은 공산주의라는 상리한 이념이 지배하고 있고 이념상의 교류는 허용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독일은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의「파워·폴리틱스」의 영향력 아래 있다. 동독의 경우 강력한 소련군사동맹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
양 독간의 접촉은 이러한 현실을 전제로 한 범위 안에서만 가능했던 것이다.
지난 73년 양독 기본조약이 체결되고 나서는 상호간의 접촉과 국민들에 대한 변의가 점차 확대되어 왔다.
독일에서는 이를 가리켜 『뱁새걸음 정책』이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는데는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이 모두 그렇듯이 많은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동서독간의 접촉은 ▲상호왕래 ▲가족방문 ▲교역 ▲우편·전화소통 ▲언론인 교류 ▲「스프츠」교류 ▲국경문제 ▲서「베를린」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특히 상호왕래 문제에서의 진전은 가장 두드러진 것이었다. 69년에 1백30만명의 서독·서 「베를린」시민이, 동독을 방문한데 비해 77년에는 방문객이 7백80만명에 이르렀다.
동독에서는 6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만 서독 방문이 허용되고 있으며 그 외에는 가족에 큰 문제가 있을 때 서독 방문이 가능하다. 77년 서독을 방문한 65세 이상의, 노인은 1백30만명, 그 이하의 연령층은 4만명에 이른다.
동서독의 교역도 77년에 87억「마르크」(46억「달러」)를 기록했는데 60년에 비해 4배가량 늘어난 교역량이다. 이는 동독의 전체 대외 교역에서 9%, 서독에서 2%의 비중을 차지하고있다.
이렇게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양독 사이에는 아직도 많은 문제가 남아있다. 동독은 시민들의 서독 탈출을 봉쇄하기 위해 장벽을 구축하고 탈출하는 사람들에 대해 총격을 가하고 있다. 또 서독에 수천명의 첩자들을 잠입시키고 있으며 바로 얼마 전에도 서독에서 그들의 첩보망이 적발된바 있다.
나는 독일이 통일되려면 아주 오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일반적인 세계 정세에 크게 영향받을 것이다. 서독은 결코 자유와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서독은 강력한 국방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일원이다. 서독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현 체제를 지지하고 있다.
서독에서는 공산당의 활동도, 허용되고 있으나 지난번 선거에서 1%의 지지도 받지 못했다
한국의 상황은 독일보다 훨씬 어려운 점이 많다. 남북한은 서로 파국적인 전쟁을 치렀고 그 경험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이론상으로 남북한은 아직도 전쟁상태에 있다.
북한은「알바니아」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공산 정권의 하나다. 김일성 집단은 전쟁이나 내부 교란을 통해 한국에 공산체제를 강요하려고 지금까지 시도하고 있다.
북한이 지금 대화용의를 표명하는 것은 중공이라는 외부 압력을 통해 나온 것이므로 남북한 접촉이 큰 성과를 거둘 것으로는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은『뱁새걸음』이나마 몇발짝 떼어놓도록 강요받게 될 것이다. 북한의 경제사정 악화 때문에 평양정권은 한국과의 경제접촉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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