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남자가 경험하는 새로운 불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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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형경
소설가

정장 차림의 세 남자가 점심시간 도심 거리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직장에서 옷차림이 지나치게 자유로워. 어디다 눈을 둬야 할지 모를 때가 있지. 미국에서는 직장 내 여성 옷차림에 엄격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 우리는 그러면 성차별 분위기가 되니….” 그들은 서로 동의하고 합의하는 말투로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덜 마신 커피잔을 들고 있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남자들은 예전에 없던 새로운 불편을 경험하고 있다. 남자끼리 근무하던 공간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받던 농담이 여직원이 등장하는 순간 성희롱 발언으로 변화하는 일을 수용해야 했다. 술자리에서 여자 몸을 예뻐해 주던 행위야 늘 하던 일인데 어느 순간 그것이 성추행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불편하지만 인식을 변화시키고 행동도 바꾸어야 했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예전 습성이 튀어나와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재수없게도.

  여자들과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면서 남자가 경험하는 또 다른 불편은 성적 긴장감의 문제다. 원하지 않은 때에 혹은 불필요한 순간에 성적 자극을 받게 되는 불편함, 손 닿는 거리에 있지만 손에 넣을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수습하는 문제가 생겼다. 여직원들 옷차림에 대해 판단하는 발언을 주고받던 남자들의 마음 배면에도 그런 불편함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여자들은 전략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성적 자극을 유도하는 옷차림을 선택한다. 외모와 외양에 따라 여자를 차별적으로 대하는 남자들의 태도에 대응해 발전시킨 생존법일 것이다.

  남자들이 겪는 더 본질적인 불편은 업무상 여직원과 의사소통하는 문제다. 상명하복을 직장인의 절대적 필수 자질로 인식하는 남자들은 여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할 때 가끔 황당해진다. “왜 그렇게 해야 하죠?”라고 되물으면 답이 준비돼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권위에 도전하는 듯 느껴진다. 여직원들은 가끔 지시한 업무에 대해 “그 일은 못하겠어요”라고 말하고, 관리자와 의논도 없이 중요한 업무를 독자적으로 처리한다. 남성 조직, 남성 직장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남자들은 여자의 언어와 행동을 이해해야 하는 부담도 안게 됐다. 여자들은 권위를 대할 때 복종하기보다 그의 마음에 들려고 하고, 조직을 수직보다 수평적으로 인식하며, 감정이 많이 담긴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것이 곧 상대에 대한 도전은 아니라는 것 등등.

김형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