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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이 무너뜨린 공든 탑|차범근 서독행 도중하차의 안팎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관계당국이 6일 『누구라도 소정의 군복무는 마쳐야 한다』고 천명함으로써 일단락된 차범근의 서독행 사건은 당초부터 좌절의 요인을 안고있었던 무분별한 소동이었다.
지난 11월 처음 서독으로부터 차범근 초청사실이 밝혀졌을 때 곧바로 제기된 문제가 병역관계였다.
대한축구협회도 그때 군당국에 차범근의 제대관계를 건의했고 이에 대해 79년5월말이 제대날짜라는 서면회신을 받았다. 이것은 또 신문지상에도 보도 되었었다.
그럼에도 차범근 측은 서독행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어떤 구제책이 있겠지』하는 막연한 기대만으로 일을 계속 추진했다.
차범근 측이 제대일을 12월31일이라고 오인한 것은 오래전의 일이며 최근에는 병역관계를 초월하여 한사코 서독행을 성사시키려 발버둥친 것이다. 거의 후견인격이었던 박동희씨(건국대교수)도 지난 5일 『이러한 장애가 있음을 뒤늦게 알았지만 워낙 차선수 측이 열망하기에 어떻게든 성사시키고 싶었다』고 실토했다.
차선수 측은 서독행을 환영하는 축구계의 일반적인 반응으로 일이 꼭 성사되리라고 거의 확신했다.
그래서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리고 있는 지난 12월 하순 김택수 대한체육회장의 도움으로 「방콕」으로부터 서독으로 건너간 차범근은 「테스트」만 받을 줄 알았던 국내의 예측을 깨고 「프로」입단계약을 전격적으로 체결하고 만 것이라.
차선수의 서독행 노력은 한마디로 무분별과 졸속이었다.
그리고 「스타·플레이어」에 보내는 만인의 갈채와 칭송을 사회적인 「특혜」와 혼동하는 몰지각을 범했다. 이 점에 관해 차선수 자신은 물론, 그의 주변에서 일을 도와준 사람들 깊이 자성해야 한다.
『차범근 같은 국민적 「스포츠」영웅에게 왜 병역특혜를주지 못하는가』하는 많은 외침은 소박한 인간적 감정이며 열렬한 「스포츠·팬」의 바람일 뿐 이것으로 엄연한 국가의 법질서를 혼란시킬 수는 없다.
사회각분야의 특기자들에게 병역상의 특혜를 주어야 한다는 필요성은 최근에 강조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하나의 과제에 불과하다.
요컨대 이번 사건은 차범근 측에서 조금이라도 냉정을 기하고 건전한 사회상식을 유지했더라면 부작용만 낳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데스·리가」에서 차범근의 성공을 확신하고 그가 설사 「돈방석에 앉을 것」이 틀림없더라도 한국의 사회는 일개 운동선수 내지 「스포츠」계에 법을 초월한 특별배려를 해줄 수는 없음을 깊이 깨달아야 산다.
또 지엽적인 문제지만 「다름슈타트」 및 「바듀즈」「스포츠·매니지먼트」사와의 계약이 차범근에게 당장 월1만「달러」선의 소득을 보장했다는 터무니없는 과장선전으로 여론을 충돌질하여 일을 성취시키려는 일부의 발상도 앞으로는 없어야 한다.
차가 보장받는 수입은 「바듀즈」가 지급하는 임시책정보증금 4천「마르크」에 최저생활보조금 2천「마르크」등 「알파」가 추가되는 것이다.
한편 차범근이 12월25일 계약을 체결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12월30일 경기에 출전한다는 「스케쥴」이 발표되었을 때 국내의 관계기관들은 「아마」자격상실 등 문제의 발생을 예견, 그것을 저지하는 적극적인 조치를 왜 취하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있다.
이러한 관계기관들의 실책은 「방콕」에서 서독으로 떠나보낼 때도 마찬가지로 범한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한국축구의 차범근 시대(70∼78년)는 일단 끝나는 것 같다.
【박군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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