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안개를 낚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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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내2는 웃고있는 사내1을 멍하니 쳐다본다.)
사내1‥(웃음을 뚝 그치며) 형씨의 낚시줄은 튼튼하다고 했지요?
사내2‥(심드렁하니) 그런데요?
사내1‥형씨의 낚시줄은 튼튼하지를 못해요.
사내2‥어떻게 그걸 단정할 수 있지요?
사내1‥낚시줄이 튼튼하면 형씨는 아마 이런곳으로 낚시질을 나오지 않았을거라는 그런 얘기입니다. 일테면 우리는 피신을 온 셈이지요.
사내2‥피신?
사내1‥이따위 낚시줄보다 더 튼튼한 낚시줄이 우리를 노리고 있거든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신도 모르게 덥석 물어버리게 되는……한번 상상해 봐요. 낚시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형씨의 모가지를 말입니다. 이런 낚시줄에 물려 나오는 피라미 새끼는 비교도 안되지요. 낚시를 피해서 낚시질을 나오다니……붕어들이 웃겠네요. 붕어들이 ……허허허……계속 잘해보슈.
(사내2 멍한 사이, 사내1 여자쪽으로 온다. 여자는 사내1을 의식하지않고 낚시질에 열중한다.)
사내1‥이보셔요. 저 사내가 당신더러 창녀같다고 했어요. 아니, 창녀라고 했어요. 냄새가 난다고 합디다.
여자‥(말이 없다.)
사내1‥당신하고 하루저녁 같이 잤다고 합디다.
여자‥(돌아보며) 조용히 하셔요,붕어가 오고 있어요.
사내1‥내기를 해도 좋다고 했어요. 나는 아니라고 하는데도 저 사내는 당신이 꼭 창녀라고….
여자‥붕어가 오고 있다니까요.
사내1‥붕어가요? 보여요? 그게.
여자‥보이죠. 오는 소리도 들려요.
사내1‥ 소리까지?
여자‥그래요, 어쩌면 우리 그이가 오는 소리와도 같은…… 그이도 그랬어요. 소리 없이 살금살금 와선…… 입을 낼름낼름하면서 다가와선 나를 덥석 물었죠.
사내1‥살금살금, 낼름낼름 와선 덥석 문다고? 별 여자 다보겠군.
(사내1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잠시동안 세사람 낚시에만 열중한다. 무대에는 5초쯤 정적이 흐른다. 사이, 고속도로의 소음 작게 한번, 두 번, 세번. 사내1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며-.)
사내1‥안개가 그만 걷힐 때도 됐는데….
(사내2에게) 형씨, 요즘의 안개들은 말이요, 햇살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니까요. 햇살이 차랑차랑하게 나야될 이 시간에도 안개는 안개대로 자욱하지 않아요? 무슨 깡다구인지 원.
(찌만 바라보고 있는 사내2. 사내1 아무래도 얘기가 하고 싶은 듯-.)
사내1‥이렇게 가만히 낚시의 찌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무서운 생각이 들때가있어요.
사내2‥ (찌를 본채) 무서운 생각이 라니요?
사내1‥붕어를 기다리고 있노라면,내게 보이지 않는 또다른 낚시줄이 나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아요. 아니, 꼭 낚시줄이 아닌지도 모르지요. 그것은 아주 튼튼한 올가미 인지도 몰라요. 단번에 숨통을 콱 죄어줄‥·.
사내2‥형씨, 혹시? 난 도무지 형씨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군요. 안개속의 찌를 바라보는 것 같이.
(사내1 사내2에게로 온다. 실수하여 자신의 낚시대를 걷어 찬다.)
사내1‥방금 무어라고 말씀하셨지요?
사내2‥무슨 말을 했느냐구요? 글쎄요.
사내1‥아, 형씨가 그러지 않았소? 거 뭐라고 했더라?(잠시 생각하다가) 응, 그렇지…안개속의 찌를 바라보는 것 같이….
사내2‥그 얘기 말이군요. 형씨의 얘기를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사내1… (사내2의 곁에 쭈그리고 앉는다) 왜 형씨는 내 얘기를 알아듣지 못할까요? 우리는 같은 한국사람이고….
사내2‥한국사람이고?
사내1‥한국사람이 한국말을 못알아 듣다니. 이상하지 않아요?
사내2‥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형씨가 더잘 알것 아뇨.
사내1‥내가요?
사내2‥그렇지요.
사내1‥아니, 형씨. (벌떡 일어서는 바람 에 낚시대 넘어진다.) 내가 더 잘 알다니요? 내가 무엇을 더 잘알지요?
사내2‥(넘어진 낚시대를 고정시키며 신경질적으로)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사내1‥아하, 그러니까 형씨도 잘 모르고있군요. 내가 무엇을 더 잘아는지.
사내2‥낚시질 좀 합시다. 형씨는 낚시질 하러 온거요? 아니면 낚시질을 방해하러온거요?
사내1‥그렇군요. (기가 죽어) 우리는 낚시질을 온거군요.
사내2‥잘 아시면서.
사내1‥(쭈그리고 앉으며) 그런데 형씨. 우리가 낚시질에 정신을 팔고있을 때 아주 튼튼한 오랏줄이 우리의 모가지를 노리고 있다는 걸 모르시오?
사내2‥모가지를?
사내1‥지금 노리고 있지않아요? 뒤에서.
(급정거를 하는 대형차량 소리, 소름은 끼치게. 사내1, 2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본다. 서로 마주 보다가.)
사내2‥정신이 헛갈리는 군요. 자리로 돌아가 주시지요. 낚시질 좀 합시다.
사내1‥아,이것…내가 형씨 낚시질 하는데 방핼 놀았군요.
(사내1 자기 자리쪽으로 몇발짝 옮기다가 돌아서서 사내2에게로 다가온다.)
사내1‥지금 저 낚시에 붕어가 몰려있을까요? 저런 찌가 솟아올라 있군요.
(사내2 낚시대를 끌어 올린다. 빈낚시.)
사내2‥밥만 따먹었군요.
사내1‥그 붕어 참 영리한데요. 허허허.
사내2‥붕어가 영리해요?
사내‥(유쾌한 듯) 그렇지 않읍니까? 밥만 따먹고 도망치는 붕어가. 요즘 붕어들의 사람 뺨친다니까요. (사이) 내 낚시대를 확인해 봐야지, 낚시줄이나 끊아가지나 않았는지.
(자기 자리로 돌아온 사내1. 나뒹굴어겨 있는 낚시대를 보고 놀라는 표정-.)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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