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가세 정착의 선행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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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부가가치세에 대한 논의가 많이 나오고 있다. 지난총선에서도 부가세가 신종벼 노풍과 더불어 가장 호된 비판의 적이 되었다.
원래 세금이란 것이 국민적 호감을 받기는 어려운 것이지만 현부가세가 세금에 대한 상징적 불만대상이 되고 있는 느낌이다.
세금의 무거움과 급격한 증가세, 또 부담의 불공평이 부가세로 집약되고 있는 것이다.
부가세를 실시한지 1년반 만에야 부가세가 한국적여건에 비추어 너무 무리였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부가세의 제도자체는 더 바랄나위 없이 이상적이다. 원론대로라면 세금이 중립적이고 공평부담이 되고 또 합리적이다.
그러나 원론으로서의 제도가 이상적이라고 해서 현실로도 꼭 훌륭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 제도가 실제 운용되는 사회여건이 더 중요한 것이다. 부가세는 모든 경제거래의 양성화와 양심적인 납세풍토를 선행조건으로 한다. 그 선행조건만 완비되면 가장 이상적인 간접세제다.
때문에「유럽」의 선진공업국이 대부분 이 제도를 채택하거나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선행조건이 불비하면 제도 자체가 왜곡된다.
일본이나 대만이 우리나라 보다 훨씬 선행조건이 정비되었지만 부가세의 실시를 늦추고 있는 것도 아직 기반조성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제도를 고치는덴 백%의 자신이 있어야한다. 특히 부가세와 같은 간접세의 일대개혁엔 시행착오가 있어선 절대로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가세는 실시되었다. 부가세논의는 일본이나 대만이 훨씬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실시는 우리가 앞선 것이다.
현 부가세의 문제점은 제도 보다는 여건과 운용이라 할 수 있다. 부가세 실시와 더불어 영수증주고 받기를 의무화하고, 모든 거래의 양성화를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거래의 양성화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상품가격의 정가가 없다. 이중가격이 공지의 사실이 되어있는 형편에서 아무리 영수증주고 받기를 강행한다 한들 어떻게 정확한 외형이 노출·파악될 수 있겠는가.
또 오랜 상거래관습이 강제에 의해 일시적으로 전복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위에 재정수요는 팽대하여 세금을 서둘러 많이 거두지 않을 수 없는 형편에 있다.
때문에 부가세가 엄연히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래의 인정과세가 존속되고 이것은 또한 부가세에 대한 불신으로 되돌아오는 상호불신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구조적으로 관습적으로 거래양성화가되기 어려운 사회여건, 또 증세목표를 안채울 수 없는 운용상의 무리가 겹쳐 결국 부가세에 대한 원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파경에서 부가세운용은 더 무리를 안 할 수 없고 이것은 과세의 불공평을 심화시킬 것이다.
가뜩이나 급속한 조세증가율로 세금에 대한 부담감이 높아지고 있는데 여기에 불공평감까지 겹치면 조세불만은 더욱 상승적으로 고조될 것이다.
따라서 부가세에 대한 불만을 줄이는 길은 조기정착을 서두르는 실적주의적 의욕을 버리는 것이다.
세금의 공평성에 대한 신뢰회복이 더 시급하다. 이런 신뢰회복의 과점에서 다소 세수차질이 나는 것은 각오해야 할 것이다. 제도의 부분적 개선으로 현재 만연되어 있는 부가세에 대한 저항감을 불식하기는 불가능하다.
처음에는 다소의 세수를 희생하더라도 성실신고·성실납부의 풍토를 조금씩이나마 조성해 갈 수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부가세를 정착화하는 정도가 될것이다. 모든 경제정책이 다 그렇지만 부가세도 국민적신뢰의 회복을 가장 서둘러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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