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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정가 「말」의 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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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의중」헤아리는 연두순시>
해마다 연두휘호를 써오는 박정희 대통령은 올해에도 「천하수안 망전필위」(천하가 비록 평안하더라도 전쟁을 잊고있으면 반드시 위험이 온다는 뜻)란 휘호를 써 새해 결의를 나타냈다. 1월18일 연두회견에선 『남북간에는 경제적으로 승부가 났다』고 선언한 박 대통령은 27일 9대대통령취임사에서도 『이제 우리의 국력은 북한을 제압하게 되었다』고 자신을 표명.
수출에 있어서도 『10년 뒤에는 1천억 「달러」에 달해 수출입 규모 2천억「달러」선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고(1·27무역확대회의), 이런 바탕 위에서 「6·23」선언 5주년에 즈음해 남북간교역과 『민간경제협력기구를 구성하자』고 제의하고 나섰던 것. 연두순시는 대통령의 「의중」을 헤아려보는 「찬스」.
호화와 낭비를 몇 차례 경고했던 박 대통령은 「돈푼이나 있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다소 욕을 먹으면 어떠냐는 식으로 결혼식을 호화롭게 하고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언론에서 사진과 함께 보도토록 하여 사회적으로 매장을 시켜야 한다』고 했고(1월30일 보사부순시), 『내가 번 돈 어디에 쓰든 무슨 상관이냐는 사고방식은 고쳐져야 한다』고 지적(2월21일 전남도 순시)
자연보호 운동과 관련해서는 『어린이들이 맨발로 뛰어 놀 산과 강이 되도록 해야한다』(10·5 자연보호헌장 선포식 치사), 『「하이힐」 「넥타이」를 맨 채 보호운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환기.
선거의 해를 맞아 『공명선거를 하라』고 이른 것도 예년과 달리 강조됐던 새 면.
『불법행위는 여야 막론하고 용납될 수 없다』(8·24 정부-여당 연석회의), 『10대 총선은 가장 깨끗한 선거가 되도록 하라』(9·20 공화지구당 개편대회치사) 는 것 등이 그 줄거리.
국회의원 선거시기를 놓고는 지난8월 진해회견에서 『순리대로 법정 기일 내 하겠다』고 말해 「순리대로」란 말의 해석을 놓고 추측들이 만발.

<파문 일으킨 현역 40% 탈락>
이효상 공화당의장서리의 「현역 40%탈락」 예언은 공화당공천에 앞서 나온 것. 『공천에 서정쇄신 결과가 반영되고 9대 의원 임기가 6년으로 길어진 것을 감안하면 현 의원의 60%가 재 공천되면 많이 될 것으로 보인다』(10·17).
이 말로 당이 벌집을 쑤신 듯 시끄러워지자 길 전직 사무총장은 이틀 후에 『1백% 재 공천을 건의할 생각』이라고 뒤엎었다.
이 무렵 김종필 전 총리는 『윗분이 무엇을 하라고 하신다면 하겠지만 개인적인 심정으로는 조용히 있고싶고 정치를 그만두고 싶다』고 발언.
또 이후락씨의 출마선언과 함께 「거물」이란 말이 많이 나오자 길 공화당사무총장은 『이씨가 정치인으로서는 신인』이라면서『그가 당선돼 당에 들어온다면 당의장을 시키겠느냐, 원내총무를 시키겠느냐, 평의원이면 족하다』고 쐐기를 박아 「거물시비론」도 일었다.
공화당 공천이 매듭지어진 후 이 의장서리는 『공천기준이 뭣이냐』는 물음에 한마디로『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답변.
그러면서 그는 『또 하나의 기준은 박력』이라면서 『얌전해빠진 사람은 공천에는 미흡하고 오히려 유정회에 알맞다』고 발언, 유정회의 반발을 샀으며 「얌전해빠진 사람」이란 말이 유정회 의원간에 유행.

<대국민 「호랑이론」을 전개>
선거때 쏟아진 「말」들은 어느 때보다 만발. 박준규 전대통령경호실장은 공천자대회에 나타나 『나를 보고는「총잡이 박」「피스톨 박」이라며 찬바람이 난다고들 하니 「이미지」 개선이 힘들다』고 실토했고, 김종필 전 총리는 부여에서 『국민을 호랑이처럼 무섭고 소중한 존재로 생각한다』는 「국민호랑이론」을 전개.
김수한 의원(신민·관악)은 합동연설에서 『9대 6년간 국회소집은 12회뿐』이라며 『건물이 동양 제 1이라 더니 폐회기록도 동양 제1』이라고 비꼬았다.
정대철 의원(신민·종로-중구)은 『국회에서 유정회는 자동거수기, 공화당은 수동거수기, 무소속은 꼭두각시 거수기』라고 공격.
이기택 의원(신민·부산동래)은 『내년엔 신민당수직에 도전하고 50대가되는 86년 후엔 정권에 도전하겠다』고 장담. 무소속 출마를 한 이후락씨는 『공천은 비단옷』이라며 『나는 앞치마 뒤치마 모두 입지 않고 뛴다』고 했다.
여야 낙천자의 반발출마가 늘어나자 공화·신민당은 서로 짠 듯이 무소속을 공격. 『이 당 저당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무소속이라고 나서고 있으나 이는 결국 혹세무민의 짓이다』(이 신민당대표). 『낙천출마자들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으로 정치 이전에 인간적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길 전직 공화당사무총장).
특히 공화당 간부들은 낙천출마자를 「배신자」로 몰아 『내가 당을 배신한게 아니라 당이 나를 버렸다』(문양·대구)는 항변도 나왔다.
여야협공에 무소속도 반격에 나서 여야에 유리한 선거제도를 문제삼아 『형님먼저 아우 먼저식 선거제도』, 『라면식 선거제도』라는 말이 전국합동연설회 마다 안 나온 곳이 없었을 정도.
선거가 끝나 여당중진·당직자의 탈락이 나타나자 야전사령관 격이던 길 전직 공화당사무총장은 『선거에는 돈이 제일이고 그 다음이 부지런한 것』이라고 토로.

<신민 공천선 극한용어 난무>
유례없이 진통을 겪은 신민당 공천과정에서도 「말」은 쏟아져 나왔다.
『굴뚝에서 곧 흰 연기가 오를 것』이라 장담했으나 「흰 연기」는 안나오고 공천심사위의 흥정내용이 누설만 되자 『나도 개××지만 여기 모인 ×들도 개××들』이라고 욕설.
낙천 현역 의원들도 극언을 불사. 오세응 의원은 『당선되어 민주반역자들을 몰아내겠다』, 한병채 의원은 『「사꾸라」들에게 쫓겨나 분하다』고 감정을 발산.
공천잡음은 있었지만 선거전의 막이 오르자 이 대표는 『지난 6년간 도둑은 못 잡아도 「도둑이야」 소리치는 방범대원 노릇을 충실히 해왔다』며 국민지원을 호소.

<3대「스캔들」통해 말 범람>
「아파트」 특혜·성락현 추문·가짜 교사자격증 등 이른바 3대「스캔들」에 대해서도 「말」의 홍수가 범람.
「아파트」사건을 「신종증수회」로 규정한 이철승 신민당대표는 『나도 먹고 너도 먹고 식으로 모두 먹자판이니 누가 도둑인지도 모를 판』이라고 비꼬았고 전주지구당에서는 「요즘 고관 집 개들이 회의를 열고 짖지 않기로 결의를 했다는데 그 이유는 주인양반이 더 큰 도둑인데 시시한 좀도둑보고 짖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고 독설
「아파트」사건을 따지기 위한 건설위 소집을 요구하면서 야당건설위원들이 여의도의 사당에서는 처음으로 농성을 벌이자 송원영 신민당 총무는 대 여 자극을 우려해 『「농성」은 아니고 「농성성 대기」』라고 명명.
나중에 열린 건설위에서 정대철 의원은 『이번 사건은 서민기대를 저버린 「서민감정배임죄」에 해당된다』고 신조어까지 동원. 책임을 추궁 받은 신형식 건설장관(당시)은 『장관자리도 공수거 공수래요, 남는 것은 책임뿐』이라고 답변.
뒤이어 성락현 사건이 터지자 『입에도 못 올릴 추잡한 사건』 『구제 받을 수 없는 사건』으로 규정지어졌고 국회에서는 잇달아「청풍운동론」도 대두.
건설부를 나무란 이 신민당대표의『어지럼증이 지랄병 된다』는 말도 국회에서 한동안 애용됐다.

<「의회부」라는 말 만들어내>
올해 정기국회도 말의 양산장.
여당의 일방통행식 국회운영을 빗대서 송원영 신민당 총무는 『우리 나라엔 여당이란 없고 정부안의 「의회부」가 있을 뿐』이라고 공격, 「의회부」란 말이 한때 유행어가 됐다.
국회의 중요쟁점이 된 「노풍」피해문제에 관해 김경인 의원(통·낙선)은『노풍은 NO풍이요 노풍』이라고 비꼬아 폭소가 터졌고 이 말을 받아 장덕진 농수산부장관은 『연말까지 개명하겠다』고 했으나 개명을 못한 채 개각으로 퇴진.
대정부 질문에서 정대철 의원(신민)은 『정권적 차원에서 퇴진…』 『정부의 선택권 부재…』등의 발언을 했다가 제명까지 검토됐으나 10여 대목을 속기록에서 삭제키로 해서 낙착.
박병배 의원(통일)은『××부에는 큰 도둑놈과 작은 도둑놈이 있다는 말이 있다』고 발언, 역시 속기록에서 삭제됐고 정일권 의장이 다시 경고.
오세응 의원(당시 신민)은 외무위에서 통일정책질의 중 『공화당정부는 언젠가는 없어지더라도 대한민국은 없어질 수 없다』고 했는데 서인석·서영희 의원(유정)은 『저게 무슨 소리냐』며 속기록 삭제를 주장해 『못한다』는 오 의원과 시비.
외무위에서는 이철승 신민당대표가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사건에 외무부관리가 관련된데 관해 『박 장관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 검찰에 부탁. 부하직원들을 실수요자로 만든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대들자 박동진 외무장관은 『집 없는 사람이 집을 가지면 무주택자가 한사람 줄어드는 것 아니냐』 『외무부직원들은 장가를 잘가 처가 덕으로 얻은 이도 있다』고 응대, 야당 측이 『국회를 모독하느냐』고 발끈, 박 외무가 결국 사과.
입법부 신세타령도 나와『허수아비도 논 가운데 세워두면 새라도 쫓는데 9대국회는 세비만 타먹는 기계가 돼버렸다. 답변은 낡아빠진 유성기의 녹슨 소리 같고…』란 발언까지 등장(이상신 의원·신민 예결위).

<"3대 골빈 「그룹」이 있다">
물가·사회상 등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비유, 풍자도 만발.
『수출 값은 반값, 배추와 고추 값은 폭리값, 땅값은 투기값, 의료수가는 수심값이며 이래서 사람값은 헐값이다』(고흥문 의원·10·1 경과위). 『정부는 불법·불신·부조리 등 3불 추방을 내세운 일이 있으나 요즘은 불안·불평·부정·불황이 끼여 칠불이 춤추고있다』(김은하 의원·10·11 본회의).
『수출한 상품을 돈 더 주고 되수입 하는 골빈 장사, 곧 넘어갈 회사를 위해 변칙구제해 주는 골빈 은행, 수천 만원을 주고 가짜 골동품·서화를 사들이는 골빈 부인 등 3대 골빈 「그룹」이 있다』(이용희 의원·11·4 예결위).
정기국회에 앞서 2월에 열린 임시국회에서 대표질문(3·2)을 한 이철승 신민당대표는 『각료 중에 체구가 재일 큰 최규하 총리가 몸집이 작은 김용환 재무의 옷을 입으면 찢어질 것』이라고 비유하면서 『국민소득 2, 3백「달러」의 헌정 체제는 1천「달러」 소득에 맞는 헌정체제로 개혁되어야한다』고 주장.
청와대 도청문제로 열린 외무위 답변을 마친 박동진 외무장관은 『12명 의원들로부터 집중타를 맞고 「정신타박상」을 입었다』고 엄살을 떤 것도 이때 일이다. 박 장관은 박동선사건과 관련, 『불편해진 한미관계』란 말을 썼으나 올해 들어서는 『명랑한 관계』란 말을 썼고 『수직관계가 수평관계로 변하고있다』고 해서 새로운 한미관계의 전개과정을 설명했다.<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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