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결식장이 전교조 성토장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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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미워하지 않는 '하늘나라 학교'의 교장선생님이 되세요."

8일 오전 10시 충남 예산군 삽교읍 보성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거행된 고(故) 서승목(徐承穆.57)교장의 영결식.

재학생 대표인 6학년 박민수(12)군이 두 손으로 눈물을 훔쳐내며 추도사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전교조 측의 사과 요구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徐교장에 대한 어린 제자의 송사(送辭)가 이어지면서 1천여명의 조문객으로 가득 찬 영결식장은 순식간에 울음바다로 변했다.

이 학교 홍승만 교감이 "교육자로서의 자존심을 짓밟힌 채 왜 이리 속히 가셨습니까"라며 눈물을 쏟아내자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참는 현직 교장선생님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대부분의 참석자는 1시간20여분 동안 진행된 영결식 내내 두 눈을 꼭 감은 채 침통한 표정들이었다.

슬픔과 분노로 뒤범벅된 영결식장에는 거친 문구로 전교조를 성토하는 만장(輓章) 40여개도 휘날렸다.

영결식장은 '인민재판 자행하는 전교조는 해체하라'라는 거친 표현의 만장 등 전교조를 비난하는 만장과 현수막으로 가득했다. 교육행정 당국에 책임을 묻고 전교조 해체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학부모 대표로 참석한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의 고진광(高鎭光.48) 상임대표는 추도사에서 "고인은 신의도 염치도 예의도 없는 집요한 협박과 모욕에 시달리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했다"며 "이는 우리나라 교육 부조리와 무책임에 대해 온몸을 던진 항변이었다"고 말했다.

한국교총 이군현(李君賢) 회장도 단상에 올라 "전교조는 월권적 행위에 대해 자숙하고 사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李회장은 徐교장 죽음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문책과,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교직사회 갈등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인의 동생인 서승직(54) 인하대 교수는 "짓밟히는 교육현실에 죽음으로 항거한 형님 같은 불행한 분이 다시 생겨, 어린 새싹들의 가슴에 멍이 드는 일이 되풀이돼선 안된다"고 말해 참석자들을 숙연케 했다.

영결식에 참석한 몇몇 재학생들은 교장선생님이 돌아가신 이유에 대해 "협박 당해서"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우리 선생님은 그런 분이 아닌데 똑같은 사람으로 취급당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한편 참석자들은 예산공설운동장 앞 광장에서 교육정상화 촉구대회를 가질 계획이었으나 전국 교장단이 "전교조와 같은 방식으로 집회와 시위를 해서는 곤란하다"는 의견을 제기해 운구행렬을 앞세우고 예산읍내 전교조 충남지부 사무실 앞에서 5분간 경적을 울리는 것으로 행사를 대신했다.

지난달 31일 徐교장 사과를 요구하는 전교조의 예산교육청 앞 시위에 참가했던 이 학교 崔모(36.여).鄭모(36.여)교사 등은 "협박전화까지 걸려오는 등 상황이 험악해서 영결식장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명복을 빌었다"고 말했다.

예산=조한필.강홍준.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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