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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가 뵈옵는 아버님생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오는 토요일은 아버님 생신이시다. 그이와 난 애들을 데리고 시댁으로 가기로 했다. 명절을 기다리는 어린애처럼 그날이 가까워 올수록 즐거워 조금씩 맘이 들떠갔다.
나는 시댁으로 가는일이 즐겁다. 그이랑 애들과 함께 오랜만에 집을 떠나 시원하게 뻗은 고속도로를 달려보는 것도 즐겁고, 어느때나 거의 표정의 변화가 없으신 아버님과 작고 고운 얼굴에 항상 웃음을 띠시는 어머님과 얘길 하노라면 나는 한없이 편안해진다.
그러나 오늘, 그이의 회사일로 못갈 것 같다는 편지를 쓰며 나는 그만 우울해졌다. 결혼한 후 띄우는 첫 편지였다. 잘 쓰지않는 어려운 한자어로 인사말씀을 드리려다 왠지 겉치례 형식처럼 느껴져 늘 가서 뵈올때처럼 친정부모님을 대하듯 그렇게 쉽게 썼다.
돈을 만원 부치면서 또 얼마나 망설였는지 모른다. 『형님들이 뭐라실까?』『돈이 적다고 서운해 하시진 않을까?』『차라리 편지를 내지말까?』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지금 내 형편에 맞으면 어른들께서도 이해하시고 어쩜 대견해 하실지도 모른다는 자위를 하며 우체국 문을 나올땐 뭔가 어렵고 큰 일을 한듯 하늘을 향해 크게 숨을 쉬었다. 그순간 내머리 위의 하늘이 어쩜 그리 파래보이고 가슴이 벅차오던지.
어른을 섬기는 마음이, 세상의 자식들이 한결같이 기쁘게 여겨질때 그보다 더한 아름다운 사회가 어디있을까? 그날 시댁에는 식구들이 많이 모이리라.
우리는 없어도 우리의 얘길하며 기쁘고 풍성한 아침이 되길 빌자. 그리고 아버님·어머님께서 더 오래오래 편히 사시길 빌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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