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세대교체 속 질 높아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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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올해의 출판계는 어느 해 보다도 세대교체의 새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출판사·독서층·서점을 망라한 이 새바람은 제작비 인상과 검인정 교과서 파동의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출판계의 질적 향상에 어느 정도의 진전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된다.
출판계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올해의 몇 가지 현상들은 우리 출판문화의 앞날을 예시하는 듯하여 흥미롭다. 첫째 신진출판사의 부상과 전통 있는 노포출판사의 침체, 둘째 한글세대가 주체하는 건전한 독서경향. 셋째 대형유동 기구설립 움직임과 서점 신설의 활기, 넷째 제작비·종이 값의 폭등에 따른 책값 인상 등.
무엇보다도 올해의 단행본 「붐」을 조성한 신진 출판사의 활약상은 출판계의 판도변화를 재촉했다는게 출판평론가 한태석씨의 평.
이미 지난해 검인정 교과서의 후유증으로 추징금에 시달리는 명문사들이 인문고 검인정 교과서 싸움에서도 대거 탈락하면서 변혁의 외적여건은 만들어졌던 셈. 여기에 지식과 패기를 갖춘 젊은 출판인들이 의욕적으로 달려들어 타성에 젖어있던 출판계에 활력소가 되었다.
한씨는 이들 출판사가 『자본력보다는 참신하고 독특한 기획, 장정으로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독서 층을 사로잡아 성공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젊은 독서 층의 독서경향이 종전과 크게 달라져 가고 있다는 점은 출판사의 이 같은 변화와 한다.
독서인구의 대종을 이루는 학생층이 산업사회화 되어가고 있는 우리사회의 인간소외 현상에 초점을 맞춘 문학소설류와 전문학술 서적에 관심을 크게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글 세대의 건전한 독서 관을 반영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한편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되기 시작, 어느 정도 정착된 도서 정찰제의 실시는 앞으로 도서유통을 근대화하는데 그 바탕을 마련한 것으로 크게 평가될 만하다.
실제로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도서유통 협의회와 서적상 조합연합회가 출판단지를 조성, 공동판매와 공동구입뿐 아니라 광고와 발질에 있어서도 일원화를 꾀하고 있는 것은 우리 나라에도 대형유통 기구가 설립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인 것으로 주목된다. 그러나 서점 신설이 활기를 띠게 되자 기존 서점들이 「카르텔」화하여 텃세를 부린 것은 독서인구의 증가 추세에 역행하는 것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출판계 내부의 새로운 바람에 찬물을 끼얹는 충격이 외부로부터 몰아닥쳐 출판산업을 어렵게 한 것도 지난 한해의 특징. 연간 l백∼1백50%의 제작비 인상에 더하여 교과서의 전면 개편작업, 선거용지 등으로 인한 인쇄 용지난, 인력난은 책값을 연초에 비해 30∼50% 올려 놓았다.
이 같은 충격으로 76년부터 약 30%의 연간 성장세를 보이던 출판 량은 주춤했다. 지난 11월말까지의 출판 총수가 1만1천9백12종으로 연말까지는 1만3천여 종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난해와 같은 수준. 그러나 출판사와 독서층·서점의 세대교체 바람이 가져온 질적 향상은 이 같은 양적 침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출판 관계자들의 얘기다. 【방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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