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인상의 흡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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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OPEC(석유수출국 기구)가 내년에 석유 값을 올리기로 한 것은 기정「코스」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동안의 「달러」화의 가치 하락과 다른 공산품 가격의 상승 등을 생각할 때 원유는 상대적으로 덜 올랐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종래 원유가 인상에 있어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억제력을 발휘했으나 금년엔 양국 모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입장에 있다.
내년의 원유 값은 분기별로 올라 4·4분기부터는 금년 비 14.5% 인상된다. 이러한 분기별 인상 방식은 처음 시도된 것으로서 내년 총 평균을 보면 9% 쯤 인상하는 폭이 된다.
그러나 분기별 인상 방식은 장기적으로 볼 때는 산유국에 유리하다.
이는 원유가 지금은 세계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정체로 가격이 소강 상태에 있지만, 앞으로 갈수록 상승「템포」가 빨라지지 않을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장기적인 수급 면에서 볼 때 원유 값은 상승 추세에 있다.
원유가 인상이 우리나라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새삼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사용 유 류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유가 상승이 직접적인 「코스트·푸시」요인이 될 뿐 아니라, 이로 인한 세계적인 원자재가 상승이 그대로 수입, 파급될 것이다.
가뜩이나 물가 전망이 불안한 판에 유가 상승까지 가세되면 물가 동요는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많다. 유가 인상의 큰 흐름을 우리가 도저히 저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명하게 대응하는 방안은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또 찾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 대응 자세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서둘러야 할 것이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시스템」의 개발이다.
생산 능력과 소비 생활의 질을 떨어뜨림이 없이 가격 상승 분을 소화·흡수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국민경제 전체로서의「에너지」사용의 효율 극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여기엔 범국가적인 차원의 투자와 정책 유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효율적 사용「시스템」의 개발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너무 소홀한 것 같다.
이번 원유가 인상을 계기로 더 한 층의 각오와 실천이 있어야겠다.
다음, 「에너지」절약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
「오일·쇼크」후 유가가 다소 안정된 것이 유 류에 대한 긴장을 크게 이완시켰다.
유 류는 고가 수입품이란 인식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유 류 소비 수준은 확실히 우리의 분수에 넘친다. 쉽게 말해 좀 춥더라도 기름을 더 아껴야 하는 것이다.
국민 경제 전체로서의「에너지」사용「시스템」에 문제가 있고, 또 과분한 소비를 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유가 인상 분의 흡수 여지가 많음을 뜻하는 것이다.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상승 요인의 배제가 가장 근본적이다.
원유가 인상이 그대로 원가에 전가되면 안정 기조의 견지는 불가능하다.
기초「에너지」인 원유 가의 상승이 물가에 미치는 결정적인 영향력을 잘 인식하여「에너지」사용의 효율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서둘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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