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땐 럭비선수로, 한때 교편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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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교·대학시절 「럭비」선수였던 그는 남성적 풍모 때문에 본명보다는「떡매」라는 별명이 더 유명.
20대 초반엔 모교인 경기고의 교사도 지냈으나 30대엔 정치에 뜻을 품어 8대 전국구 후보에 올랐다. 당시 전국구 후보 중 국회에 들지 못한 사람들은 유정회 진출 등으로 빛을 보았으나 유독 이씨만 불우했지만 10대에서 이병옥 의원을 제치고 공천을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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