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파위주 조각 실패로, 색깔 없어진 태평내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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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동경=김두겸 특파원】대평 내각은 「참신·실무내각」으로 구성하겠다는 당초 구상과는 달리 「재고 일소 내각」, 「연말 대 매출내각」이 됐다는 평가다. 신인을 12명 기용하여 참신하다는 인상을 풍기려고 했지만 이들 신인들의 대부분은 적령기를 넘긴 각료 예비군들이었기 때문에 실제는 이번 조각을 통해 적어도 「오오히라」(대평), 「후꾸다」(복전)파에선「체화」가 말끔히 정리된 셈이다.
또 그 어느 때보다 파벌안배가 철저해져 정책추진 의욕을 나타내는 내각이라기 보다 색깔없는 조각으로 끝났다.
다만 실무 내각의 냄새가 나는 것은 경제각료 뿐. 대장성 출신의 「가네꼬」(금자) 대장상, 재계 출신인 「고사까」(소판) 경제 기획청 장관, 당인이면서 정조회장을 거친 「에사끼」(강기) 통산상 등 세 경제각료는 모두 실무형이며 이 같은 경제실무형 포석은 활력을 잃고 있는 재정을 지렛대로 받치고 경제성장 회복을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오오히라」 수상이 가장 고심한 직책은 외상. 당초 그는 내년에 동경 선진국 정상회담도 있고 해서 「후꾸다」전 수상이 직접 외상에 취임해줄 것을 요청했다.
「후꾸다」의 거절로 그는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소노다」(원전)뿐인 점을 감안하여 결국 「후꾸다」외교의 후계자인 「소노다」를 재기용키로 한 것이다.
한편 이번 조각에서 관심의 초점이 됐던 「다나까」(전중)의 영향은 예상외로 많이 엷어졌다. 「다나까」파가 노렸던 법상에는 75세의 무파벌 신인이, 운수상에는 「미끼」(삼목)파, 그리고 「다나까」의 단골인 건설상에는 「후꾸다」파가 각각 들어앉았다.
이는 만 하룻 동안의 조각 진통으로 불가피했다는 의견이며 이 때문에 「오오히라」 내각은 결국 『파벌에 의한, 파벌을 위한 내각』이 됐다는 평가를 받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한편 「경제대국」 일본이 「정치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후꾸다」 내각에서 신설됐던 대외 경제상직이 폐지되어 경제외교에는 많은 시련이 잇따를 것으로 보이며 「후꾸다」 외교노선이 「소노다」 외상에게 연결케 되어 「오오히라」내각의 대한 정책도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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