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대결과 인신 공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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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선거 운동 기간이 12∼17일 밖에 안되다 보니 벌써 선거 운동이 종반에 접어들고 있다. 지금의 선거 양상은 우선 표면상으로는 지난 주말부터 시작된 합동연설회를 통한 후보들의 정견 발표가 주류를 이루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뒷전의 탈법적인 득표 공작이 또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루고 있다.
지금까지의 경과로 봐선 합동연설회에 동원되는 청중이 꽤 많은 것 같다. 6년만의 선거에 대해 이렇게 국민들의 관심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합동연설회를 통해 여당 측은 그 동안의 경제 성장과 안보 태세, 그리고 지역 사회 개발을 주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야당 측은 3대 「스캔들」과 정치의 위축, 그리고 구체적 문제로 부가세 등을 들어 정부의 그 동안의 시정을 비판하고 있다.
흥미 있는 현상으로는 여당 후보마저 행정기관의 관료적 형태·부조리·국민의 재산권 침해 등을 비판하고 있는 점이다.
비록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제스처」라고는 하지만, 여당의 후보라면 남의 얘기하듯 하기보다는 시정을 위한 노력을 더했어야 옳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일부 후보 중에는 적극적인 정견의 표명이나 상대측의 정책 및 실적에 대한 황당한 비판이 아니라 타 후보에 대한 인신 공격과 비방을 일삼는 일이 없지 않다고 들린다. 이런 언동은 삼가야겠다.
선거 연설이란 원래 후보자들이 그 동안의 실적과 앞으로의 정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국민의 주권 행사를 원활히 하도록 정책 대결의 성격을 띠는게 바람직하다.
그런데 선거전의 양상은 후보자의 수준뿐 아니라 유권자의 수준에 의해서도 상당히 좌우되는 것이므로 정책 대결의 성격을 지니기 위해선 정당과 후보, 그리고 유권자의 합심 노력이 요구된다.
선거가 정책 대결의 양상을 뚜렷이 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나 탈법 선거 운동의 자행은 더욱 한심한 일이다.
관계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4일까지 후보자 58명을 포함해 1백25명이 선거법 위반으로 입건되었으며 이중 15명이 구속되었다고 한다.
입건된 사람 중에는 정당 소속보다는 무소속이 월등히 많고 탈법의 내용에 있어선 금품 및 음식물 제공, 기부 행위 등의 매표성 행위와 중상 모략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밖에 공평이라는 관점에서 문제되는 것으로는 정당 후보자들의 당원 단합 대회란 명목의 사실상 선거 유세와 당원용을 빙자한 유인물의 배포가 지적되고 있다.
학교 수업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당원 단합 대회」가 진행되고, 당원·비당원을 가리지 않고 대량으로 「당원용」 유인물이 배포되는 마당에 무소속인들 탈법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후보와 유권자의 선거 운동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서 현행의 엄격한 선거법을 1백% 준수할 후보자가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선거법 위반에 대한 단속도 매표·타 후보 중상등 질이 나쁜 행위와 정치가 심한 탈법 등으로 일정한 선을 그을 수밖에 없겠다.
이 경우 가장 중요한 원칙은 여·야·무소속의 구별 없는 공정한 단속일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선거 운동이 정책 대결 중심으로 깨끗하게 진행되도록 범국민적인 자각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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