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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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TV「뉴스」를 보면 북경은 사뭇 겨울인 것 같다. 누비옷을 두툼하게 껴입고 목도리를 두르고「마스크」까지 한 군중들이 우중충 천안문 광장을 서성대고 있다. 「대자보」를 보려는 사람들이다. 동북아의 겨울추위는 예외없이 대륙성 고기압 때문이다. 「시베리아」에서 중국 대륙을 거쳐 강추위가 밀려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그 추위의 본 고장에 때아닌 춘풍이 살랑거리는 것 같다. 물론 장미꽃을 피울만한 감미롭고 따스한 바람은 아니다. 혹시 장미의 얼어붙은 뿌리에 입김을 불어넣는 것이나 아닌지.
외신에 따르면 중공의 각종「매스컴」은『인민의 대자보 운동을 통한 자유언론과 민주주의 활동을 허용한다』는 보도를 하고 있다. 하긴 중공식 자유란 어항 속에서 활개를 칠 정도의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항 속의 물이 꽁꽁 얼어붙지 않는 것만으로도 봄을 연상하게 한다.
「대자보」란 모택동의 독특한 발상으로 1930년대의 해방 구시대부터 비롯되었다.「사회주의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대중들에게 활발한, 의사 표시의 수단으로 제공되었다.
흔히 한정된 장소의 벽에 육필로 방문을 써 붙인다. 대자보를 벽신문이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중공의「문화혁명」도 깃발이나 구호에 앞서 대자보에서 시작되었다. 중공식 여론형성은 하나의 공식이 있다. 먼저 중앙당의 이론적 지침은 당 기관지「인민일보」를 통해 선도된다. 이것이 북경대학「캠퍼스」에선 대자보를 통해 토론된다. 중공의 각종「매스컴」은 그 뒤를 쫓아 기사와 논설로 뒷받침한다.
그러나 이른바「반 주자파 운동」(1976년)이후 그 벽 신문은 더욱 대중화하고 있다. 누구나 읽을 수 있게 광장에 버젓이 게시되는 것이다.
바로 1975년에 채택된 중공 신 헌법도 그런 대자보 운동을 합법화하고 있다.
중국에는 옛날부터「성토」라는 말이 있다.
청조이후 각 군벌이 싸울 때 적을 비난 공격하는 성명문을 성벽에 붙이곤 했다.
무력으로 결판을 내는 무투에 앞서, 글로써「문투」를 한번 벌여 성토를 해보는 것이다.
필경 중공이 어려운 한자들을 간략화 하는 문자혁명을 이룩한 것도 벽 신문적 사고일 것 같다. 많은 대중들에게 사상 교육을 더욱 효과적으로 시킬 수 있게 하려는 조치인 것이다. 좀더 고정적으로, 좀더 친근하게, 좀더 대중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벽 신문은 그럼직해 보인다.
어쩌면 벽 신문의「성토」를 받고 곤경을 치른 등소평은 누구보다도「대자보」의 활용에 관심이 많을 것 같다. 바로 요즘「대자보」의 주인공은 등 자신이기도 하다. 과연 그것이 봄을 알리는 춘방일지는 아직 판독 잘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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