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 영역 잘못된 것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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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전으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많은 문학작품들이 외국인, 혹은 한국인에 의해 영역소개 되었으나 역자들이『영어에 대한 어학력 부족, 원작을 다루는 불성실한 태도, 문학작품을 다루는 감수성의 결핍 등으로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이론이 제기돼 주목을 끌고있다.
영문학자 정종화씨(고대교수)가「성곡논총」9집에 발표한 논문『한국 번역 문학론』에 따르면 번역작업이 훌륭한 역자 손에서 이룩되는 경우 원작의 가치는 재평가되고 새롭게 해석되는 것인데 지금 우리 문학의 영역은 원작의 뜻조차 제대로 재생시키지 못하고 있어 작품의 가치를 해석하고 문학성을 제시하는 단계는 요원하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특히 고전을 영역하는 경우에 있어서 가령 영역된 황진이 시조의 경우「동지」「춘풍」「이불」「서리서리」「어른님」「구비구비」같은 정적 표현을 쉽게 다른 언어로 번역할 수 없어 역자들이 손쉽게 처리해 버린 점을 지적했다.
번역자인「리처드·러트」씨나, 이학수씨나, 「피터」현씨가「동지」를「Nov-ember Night」혹은「Mid winter Night」로 번역하고 있는가 하면「이불」은「coveriet」(침대보)로 오역했는데 이것은 결코 한국 고유의 정서가 뭉실거리는 이불에 해당하는 단어일 수 없다는 것이다.
외국인이 번역한 경우 오역의 예는 더욱 심해져 박두진씨의 시『해야 솟아라』를 번역한「마셜·필」씨는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에서「밤새」를「Licea Nightbird」의「밤의 새」로 번역한 예를 정씨는 들었다.
『생활습관과 문화적 전통 속에서 파생하는 표현이나 특수한 정신문화를 반영하는 어휘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번역은 엄밀한 의미에서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한 정씨는『그러나 번역 문학에는 무엇보다 성실하고 절제있는 태도가 전제돼야 하는데도 그러한 기본적 자세가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번역 문학이 다른「장르」에 비해 경시 당하고 때로는 예술의 영역 밖으로 밀려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이 논문의 부록으로『「리처드·러드」의<죽림>에 나타난 한국 문학 영역의 몇 가지 문제점을 곁들였는데 이 중에서도 한국시 영역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잘못을 지적하고「러트」신부는 서문에서 우리 시조의 특징을「비 예술성」과「거칠음」으로 대표하고 있는데 이 두 특징은 애석하게도 그의 산문적인 번역, 빈약한 문체, 시의 압축성과 정형을 파기한 비 문학성 오역과 부정확한 표현으로 가득 찬 그의<죽림>에 해당되는 말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우리의 번역문학이 최근에 이르러 매우 활발하고 질적으로도 괄목할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일반적인 견해는 정씨의 이 논문으로「브레이크」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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