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눈치살핀|추곡수매가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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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해 추곡수매가는 가마당 3만원선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농민의 입장에서 볼 때 15·4%의 인상률이 만족스럽지 못할지 모르나 한 가마에 4천원이 올랐다는 것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물론 올해 농사는 극심한 봄가뭄, 가을 병충해등으로 힘겨웠고 일반 물가상승에 한해 극복, 병충해방제등 추가 부담까지 겹쳐 인상 요인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추곡 생산비가 가마당 1만8천5백원으로 추계되고 있고 산지 쌀값도 2만8천7백원선에 머물러 있는 만큼 3만원선은 비교적 높은 수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 물가의 급격한 상승으로 정부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고 농수산물 가격이 불가상승을 주도하는 것으로 지목되고 있는 싯점에서 이 정도의 인상을 단행했다는 것은 농수산부가 농민의 이익을 위해 그만큼 애를 쓴 결과라고 인정해 주어야 한다.
사실 이번 수매가격 결정은 생산자 보호라는 면보다 오히려 소비자 보호라는 측면에서 적지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수매가가 가마당 3만원대를 넘어선 만큼 내년도 시중 쌀값이 4만원대를 넘을 것은 거의 틀림 없겠기 때문이다.
정부는 수매가 인상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부담을 고려, 정부미 방출가는 인상치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늘어나는 양특적자 때문에 방출가 인상은 시간 문제다. 수매가 인상률이 작년보다 높은만큼 방출가 인상율도 높을 것으로 봐야 한다.
정부미 값이 오르면 시중 쌀값은 더 크게 뛰게 마련이다.
쌀값이 뛰면 일반 물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늘어나는 재정 적자도 문제다.
이번 수매가 인상으로 올해 추곡수매에 필요한 자금은 작년의 4천8백74억원에서 1천3백30억원이 늘어난 6천2백4억원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이중 32%에 해당하는 2천억원을 한은에서 차입할 예정인데 이렇게 되면 차입액 누계는 9천5백60억원에 달한다.
또 이중 곡가제 실시에 따른 양특 적자는 지난 연말의 3천6백42억원에서 올해에 8백억원이 늘어 4천4백억원이 넘으리란 계산이다.
이번에 수매가를 4천원 올린만큼 내년도 방출가를 인상하지 앉으면1천8백억원의 신규적자가 생길 요인을 안고 있다.
이같은 재정부담은 통화증발로 직결, 물가안정을 위협하고 소비자 부담을 가중시킨다.
결국 추곡 수매가는 생산자의 이익이 소비자의 불이익이 된다는 「야누스」적 성격 때문에 적정선을 정하기가 어렵다.
이번 수매가는 목도열병피해 농가에 대한 우대등 전체적으로 생산자인 농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이 보이나 여기에도 문제가 없는게 아니다.
우선 수매물량을 1천1백만섬으로 책정, 작년의 계획 수매량보다 50만섬이나 줄었다.
올해 쌀 생산이 많이 감산된다면 몰라도 생산량은 늘 것으로 보면서 수매계획량을 줄인 것은 납득할 수 없다.
특히 금년부터 정부미 소비가 급격히 늘어 연간 방출량이 1천만섬을 넘고 있는 만큼 소요 정부미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수매 물량은 늘려야 할 것이다.
또 한가지 문제는 시차제 수매를 실시하면서 늦게 출하하는 농민에게 시차보상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출하시기를 정부가 지정하면서 3개월이나 늦게 배정받은 농민에게 그에따른 손실 보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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