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해진 기업 자금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최근 우리나라 기업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자금난은 여러 기업들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로 심화되고 있으나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볼 수도 있다.
상반기에 연평 40%이상 늘어난 통화를 26%선으로 줄었으니 사업을 잔뜩 벌여 놓은 기업들이 자금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잉 팽창된 통화를 연율 26%선으로 줄인 통화당국의 정책 노력은 올바른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최근들어 부동산 값과 일반 물가가 그나마 소강 상태를 보인 것은 통화 안정에 힘입은바 많을 것이다.
그러나 통화정세에 대해 아직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우선 재정 부문에서 하반기에 철초 요인이 많고, 해외 부문의 자금봉쇄도 한계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여간 단단한 각오를 하지 않는 한 통화 안정을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다만 통화문제는 물리적인 억제만으론 미급하다. 통화 증발을 억제하는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의 정상적인 순환이 보강되지 않으면 안 된다.
통화가 늘지 않을 수 없는 요인을 잔뜩 만들어 놓은 채 물리적 억제를 한다고 해서 안정기조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이 최근 그토록 심한 자금난을 겪는 것은 이미 벌여 놓은 사업들이 많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그것이 기업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서만 결정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순수한 상업 「베이스」 에 의한 설비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문제가 바로 통화안정의 큰 장애가 된 것이다.
이런 사례는 특히 중화학공업분야 등에서 심한데 중화학사업 일수록 대규모 자금을 필요로 한다.
또 적자를 보더라도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정책기조도 통화팽창을 자극하지 않을 수 없게한 요인이다.
물론, 기업의 자금압박 요인중엔 가치 퇴장을 위한 음성투자·비업무용 부동산의 과잉보유, 그리고 분수에 넘친 기업확장, 또 게다가 다소의 엄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고도성장 「무드」 와 자금순환이 정상 궤도를 이탈한데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점, 오늘의 대금난은 정책당국· 기업 및 금융당국 모두가 함께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안정기조의 정착화를 위해선 직접 통화의 유지와 더불어 부단한 시설투자와 정상적인 생산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방위산업과 생산 구조의 고도화를 위한 투자에는 중단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물가를 안정시키고 수출을 늘리기 위해선 물량 공급을 계속 늘려가야 할 것이다. 또 이미 벌여놓은 여러 사업을 잘 마무리 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아직도 통화가 제 갈 길을 못찾고 있다. 경제순환 「채널」 밖에서 대기 상태에 있는 것이다. 안정 기조에 대한 불신과 「인플레」기득이익 때문이다.
통화 증가율이 경상 성장률과 비슷한 연율26%를 기록하고 있지만, 기업이 심한 자금난을 겪고 투자·생산활동이 위축을 받고 있는 것도 이런데 이유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통화 안정을 유지하면서 제한된 통화를 어떻게 필요한 부문에 유도, 효율적으로 쓰이게 하느냐가 가장 핵심적인 과제일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